로마공화정, 1월 7일. 원로원, 카이사르에게 '원로원 최종 권고' 결의.
1월 12일
카이사르, 1개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주사위는 던져졌다!") 리미니에 입성. 호민관
안토니우스 및
카시우스가 합류.
1월 17일
폼페이우스, 로마를 탈출. 키케로에 이어 집정관 마르켈루스와 렌툴루스도 탈출.
로마는 대혼란에 빠짐. 카이사르와 결별한 라비에누스, 카푸아에서 폼페이우스 진영에 가담.
2월 25일 폼페이우스, 브린디시까지 후퇴한 후, 3월 17일에는 그리스로 탈출. 카이사르, 이탈리아 반도를 사실상 제패하고 19일 로마로 떠남.
12월 2일 카이사르, 로마에 들어가다. 독재관에 지명됨. 반술라파의 자손에 대한 공직추방령을 해제, 각 속주 총독에 카이사르파를 임명. 새 화폐 발행을 비롯한 경제정책을 실시. 이듬해인 기원전 48년도 집정관에 선출됨.
12월 13일 폼페이우스를 추격하기 위해 로마를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