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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중명전(重明殿)
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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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 (重明殿)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2층 건물. 서울 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53호이다. 대지는 2,170㎡, 건평 400㎡, 서양식으로 지어진 2층 벽돌집인데, 우리 나라 궁중의 서양식 건물로는 최초의 것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중명전 (重明殿) 궁궐 중구 대한 제국 1905년 조선 고종 박제순 월산 대군 이완용 이토 히로부미 한규설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 이재극 하야시 곤스케 미·소 공동 위원회 통감부 을사늑약 을미사변 덕수궁 경복궁 경희궁 석조전 창경궁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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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순 (1 ~ 4 위)
2019.11.13
을사늑약(조약) 장소, 중명전(重眀殿)
【여행】 올 11월 17일은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년 대한 제국과 일본 사이에 강제로 맺은 무효 조약으로 학창시절 을사보호조약이라 배움)이 체결된 지 114년 되는 날로 이날을 잊지말자고제정한 순국선열의 날이기도 하다.
2019.10.28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리는 청소년 역사콘서트
【문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소장 김동영)는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근현대사 교육프로그램인 「중명전 청소년 역사콘서트」를 오는 11월 1일 오후 3시부터 중명전 2층 강당에서 개최한다.【덕수궁관리소】
2015.05.28
한양도성에 무엇이 있을까? 돈의문터~정동 ~ 숭례문 (2015.5.28)
【여행】 서울에 50년 이상 살면 서울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깊이 알지 못하며, 특히 한양도성에 대해서 그렇다. 그래서 작가와 함께 하는 한양도성을 알고 걷기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2회차에 걸쳐 한양도성 탐방 중 1회차로, 정독도서관에서 숭례문까지 걸었지만 오늘 포스팅은 1회차 마지막 구간 돈의문터에서 숭례문까지다.
 
◈ 등록순
2019.11.13
을사늑약(조약) 장소, 중명전(重眀殿)
【여행】 올 11월 17일은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년 대한 제국과 일본 사이에 강제로 맺은 무효 조약으로 학창시절 을사보호조약이라 배움)이 체결된 지 114년 되는 날로 이날을 잊지말자고제정한 순국선열의 날이기도 하다.
2019.10.28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리는 청소년 역사콘서트
【문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소장 김동영)는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근현대사 교육프로그램인 「중명전 청소년 역사콘서트」를 오는 11월 1일 오후 3시부터 중명전 2층 강당에서 개최한다.【덕수궁관리소】
2015.05.28
한양도성에 무엇이 있을까? 돈의문터~정동 ~ 숭례문 (2015.5.28)
【여행】 서울에 50년 이상 살면 서울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깊이 알지 못하며, 특히 한양도성에 대해서 그렇다. 그래서 작가와 함께 하는 한양도성을 알고 걷기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2회차에 걸쳐 한양도성 탐방 중 1회차로, 정독도서관에서 숭례문까지 걸었지만 오늘 포스팅은 1회차 마지막 구간 돈의문터에서 숭례문까지다.
 
▣ 백과사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2층 건물. 서울 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53호이다. 대지는 2,170㎡, 건평 400㎡, 서양식으로 지어진 2층 벽돌집인데, 우리 나라 궁중의 서양식 건물로는 최초의 것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중명전의 처음 명칭은 수옥현이었다. 1900년 1월 덕수궁 별채로 고종의 외교 사절단 접견소 겸 연회장으로 이용되었다. 간단하고 복잡하지 않은 2층 벽돌집이지만 여느 것과 다른 특별한 점은 1층의 아치형 창과 2층 서쪽에 베란다가 꾸며져 있는 것이다.
 
본래 이 건물이 들어선 자리는 덕수궁 안 평성문 밖인데 1905년에는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인 을사조약이 이곳에서 조인되었다.
 
1906년에는 황태자였던 순종이 윤비와의 가례 의식을 이 곳에서 치렀다. 고종은 1904년에 덕수궁이 불에 타자 이 곳으로 옮겨와, 1907년 순종에게 왕위 계승할 때까지 3년 동안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덕수궁의 규모를 축소시킴에 따라 1915년에 이르러 이 건물은 외국인들에게 임대되어 경성 구락부가 되었다. 1925년에는 불에 타 벽면만 남아 있던 것을 다시 지어 그 전의 상태를 회복하였으나 원형에서는 조금 변형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외국 사람들의 사교장으로 쓰였다. 최근에까지는 영친왕의 비 이방자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개인에게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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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 참조
덕수궁의 별채
 
1905년 을사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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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참조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