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성 여왕 때의 이름난 궁수 거타지에 관한 설화. 《삼국유사》 권2 기이편의 제2 '진성 여왕 거타지조'에 자세히 나온다.
신라 제51대 진성 여왕이 왕위에 오른 지 몇 해 안 되었을 때, 여왕의 아들 양패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이들의 뱃길을 방해하기 위해 백제의 해적들이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여 활 잘 쏘는 궁수 50 명도 함께 길을 떠났다. 이 때 거타지도 양패를 수행한 궁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신들이 탄 배가 항해 중 '곡도'라는 섬에 이르렀을 때 풍랑이 일어, 섬에서 10여 일을 묵게 되자, 양패는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하였다. 그 때 나온 점괘는 '섬 안에 신비한 못이 있는데, 이 못에서 제사를 지내야 풍랑이 멎는다'는 것이었다. 양패가 점괘에 따라 못가에서 제사를 지내자, 갑자기 못의 물이 높이 솟아올랐다. 한편, 그날 밤 양패의 꿈에는 한 노인이 나타나, 섬에 궁사 한 사람을 남겨 두고 가면 뱃길이 무사하리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러자 양패는 섬에 남을 사람을 뽑기 위해 데리고 온 궁사 50명의 이름을 쓴 나뭇조각을 못에 띄웠다. 50명의 나뭇조각 중 거타지의 이름이 쓰인 것만 물 속으로 가라앉자, 거타지는 어쩔 수 없이 섬에 남게 되었다.
섬에 홀로 남은 거타지는 근심에 싸여 있었는데, 갑자기 못 속에서 한 노인이 나와 거타지에게 애원하였다. 매일 해뜰 무렵이면 중이 한 사람 하늘에서 내려와 주문을 외며 못을 세 바퀴 도는데 어쩐 일인지 그렇게 하고 나면 노인의 자손들이 물 위로 둥둥 뜨게 되고, 중은 그들의 간을 빼먹는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모두 다 죽고 지금은 노인 부부와 딸 하나만 살아남게 되었으니, 그 중을 활로 쏘아 죽여 달라고 하였다.
거타지는 노인의 간청을 받아들이고, 다음날 아침 을 기다렸다. 해 뜰 무렵이 되자, 노인이 말하였던 것처럼 하늘에서 중이 한 사람 내려왔고, 주문을 외며 못을 세 바퀴 돌았다. 그러자 어제의 그 노인 부부와 딸이 물 위에 떴고, 중은 노인의 간을 빼먹으려 하였으나 거타지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죽은 중은 곧 늙은 여우로 변하였다. 이에 노인이 다시 나타나 거타지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자신의 딸과 결혼해 줄 것을 간청하자, 거타지는 그녀와 결혼하였다.
서해의 용왕인 노인은 딸을 꽃가지 하나로 변하게 만들어 거타지가 품에 품고 갈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두 마리 용을 시켜 사신의 배가 있는 곳까지 거타지를 데려다 주게 하였다. 용들은 배가 당나라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호위하였고, 이를 알게 된 당나라 왕은 양패 일행을 성대 하게 대접하고 큰 상까지 내렸다.
거타지는 신라에 돌아온 후, 꽃가지를 다시 여자로 변하게 만들어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이와 같은 설화의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거타지 설화는 영웅이 괴물을 무찌른다는 내용과 많은 사람들의 이로움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킨다는 내용 등이 섞여 있는 이야기이다. 이와 비슷한 설화는 《용비어천가》에도 실려 있으며, 제주도에 전해지는 '
군웅본풀이'도 같은 유형의 설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