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에 모든 불경과 법문을 논한 글들을 모아 목판에 새겨 박아 낸 불경. 팔만 대장경이라고도 한다.
고려 대장경은 1011년(고려 현종 2년)에 거란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자, 부처의 힘을 빌려 나라의 안전을 꾀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고려 대장경 은 처음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무려 24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거대한 사업이었다. 펴낸 과정에 따라 1, 2차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차
우리 나라에서 처음 펴낸 대장경은 《초판 고본 대장경》과 《속대장경》의 두 가지이다.
① 《초판 고본 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받은 고려 현종 때 처음 만들기 시작하였다.
대구의 부인사에 도감(임시로 두었던 관청)을 두어 《
대반야경》 《
화엄경》 《
금광명경》 《
묘법연화경》 등을 펴내었는데, 문종 때에 완성을 보았다.
이 《초판 고본 대장경》은 1232년(고종 19년)에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다. 그 가운데 일부가 일본의 교토 난레이[南禮]사에 남아 전한다.
② 《속대장경》은 《초판 고본 대장경》에 이어 펴낸 것이다.
문종의 넷째 아들인 대각 국사 의천이 송나라에서 모아 온 불경들을 비롯하여 1073년(문종 27년)부터 1090년(선종 7년)까지 모은 여러 불경의 목록을 엮어서 그 목록에 따라 펴낸 것이다.
이 《속대장경》도 《초판 고본 대장경》과 함께 몽고군의 침입으로 불타고 말았다. 다만 일부가 국내와 일본에 남아 전한다.
제2차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에 피란한 고려 조정이 또다시 부처의 힘을 빌려 몽고 세력을 물리치려고 대장경판을 만들었다.
1236년(고종 23년)에 강화도에 장경도감(대장경을 펴내기 위한 임시 관청)을 두어 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하여 1251년(고종 38년)에 완성하였다.
이것이 곧 오늘날 남아 전하는 《팔만대장경》이다.
처음에는 강화도 대장경판당에 두었다가 조선 초기에 서울의 서대문 밖에 있던
지천사로 옮겼고, 다시
1398년(조선 태조 7년)에 경상 남도 합천
해인사로 옮기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팔만대장경》의 경판수는 모두 8만 1,258판인데, 앞뒤로 새겨져 있어서 면수로는 모두 16만여 면에 이른다.
판목의 크기는 세로 24cm 안팎, 가로 69.6cm 안팎, 두께 2.6~3.9cm로 후박나무 에 새겨져 있다.
이는 해인사 대장경판이라 하여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