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에는 나뭇가지나 돌을 다듬어 도구로서 사용했으나,
네안데르탈인에 이르면 얇은 조각돌을 이용하여 칼날, 송곳, 칼 등을 만들었으며, 크로마뇽인에 이르러서는 돌 이외에 뼈나 뿔도 사용하였고, 낚시나 활과 같은 발달된 연장을 만들어 냄으로써 사냥과 고기잡이로서 구석기 시대 의 절정을 이루었다.
구석기인은 나무 열매를 따 먹거나 나무 뿌리를 캐 먹었고, 짐승과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였다. 그들은 추위와 사나운 짐승의 습격을 막기 위해 동굴 속이나 바위로 가려진 오목한 곳에 살았고, 짐승의 가죽이나 엮은 풀로 몸을 가렸다.
한편 호모 에렉투스(직립인)인
베이징 원인의 동굴에서 불을 사용한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인류는 이 불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지배하고 의식주 생활을 발전시켜 왔다. 구석기인 은 먹이를 따라 무리를 지어 이동 생활을 하였으며, 사냥 등을 위해 서로 협동하고 연락하는 가운데 공동 생활과 언어 생활이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구석기 시대 중기의
네안데르탈인은 시체를 부장품과 함께 매장함으로써 그들에게 내세의 관념이 나타났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또 구석기 시대 후기의
크로마뇽인은 동굴 깊은 곳의 벽면에 짐승이나 풍만한 여자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것은 풍성한 사냥과 많은 자손을 기원한 것이다.
그러한 동굴 벽화는 주로 서남 프랑스와 북부 에스파냐에서 발견되었는데,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가 유명하며, 구석기인들에게 종교 의식과 함께 예술 감각이 싹텄음을 보여 준다.
우리 나라의 구석기 문화는 약 50만 년 이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시대의 유적이 전국 각지에서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도 전국에 넓게 퍼져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기 구석기의 유물은 평남 상원군 검은모루,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충남 공주군 석장리, 충북 제천군 점말 동굴과 청원군 두루봉 동굴 등지에서 출토되었고, 후기 구석기의 유물은 충남 공주군 석장리와 함북 웅기군 굴포리에서 출토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옮겨 다니면서 사냥과 고기잡이로 생활하였고, 불을 사용했으며, 소박한 원시 미술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