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2 ~ 1587] 조선 중기의 학자. 호는 송암(松巖)이다.
1561년(명종 16년)에 진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잇달아 부모상을 당하자 3년씩 산소 곁의 초막을 지키며 관계에 나아갈 것을 단념하였다.
이황(李滉)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
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이들로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내시교관(內侍敎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56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묘지는 안동부 서쪽 마감산(麻甘山)에 있다.
그는 시가에도 관심을 가져 경기체가를 본뜬 《
독락팔곡》과 시조 《
한거십팔곡》을 지었다.
저서에 《송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