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의 정전이다. 중요한 국가 의식을 거행하거나 조회를 열던 곳이다.
조선의 5대 궁 정전 중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의 정전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운 건물이다.
'중화(中和)' 뜻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으로, 《중용(中庸)》에서 유래한 말이다.
원래 임진왜란 당시 임시 행궁이었던 경운궁은 인조 연간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 및 주변 별당만이 존재한 작은 궁이었다. 그러다 건양 1년(1896)) 아관파천으로 러시아공사관에 몸을 의탁했던 고종은 1년 뒤 건양 2년(1897) 환궁(還宮)하면서 기존의 경복궁, 창덕궁이 아닌 근처의 경운궁을 선택했다. 하지만 몇백 년을 버려진 곳을 임금의 거처로 삼으려니 대공사가 필요했다. 따라서 명목상으로는 '중건'이라 했지만 사실상 새 궁궐 하나를 창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기존에 있던 즉조당을 태극전, 중화전으로 부르면서 정전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즉조당은 너무 좁았으므로 규모 있는 정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국 선포 이후 5년이 지난 (광무 6년(1902))에야 정식 정전으로 지은 건물이 중화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