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 ~ 1951] 소설가. 본관 전주. 호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人), 춘사(春士). 창씨명 곤토 후미히토[金東 文仁]. 평남 평양 출생.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를 졸업하였다. 한때 귀국하였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 미술 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했다.
1919년에 일본 도쿄에서 문예 동인지 《
창조(創造)》를 펴내어 출판법 위반 혐의로 6개월 징역에 2년간 집행 유예 선고를 받았다.
초기의 작품인 『목숨』 『
배따라기』 『
감자』 『
광염(狂炎) 소나타』등의 단편 소설을 통하여 현대적인 간결한 문체의 본보기를 보였다.
작품의 경향은 사실주의적인 수법을 썼으며, 1925년대에는 예술 지상주의를 내세워 순수 문학 운동을 벌였다.
소설 외에 평론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특히 『
춘원 연구』는 역작으로 손꼽힌다.
일제시대때 이광수는 1939년 ‘성전종군작가’로 황군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에는 불경죄로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를 지내고, 1944 년 친일소설 《
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6·25 전쟁 때 가족들은 피난을 가고 홀로 중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1955년 사상계사(思想界社)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 )’을 제정, 시상하였으나, 1979년부터 조선일보사에서 시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