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산골 나그네」를 시작으로 「총각과 맹꽁이」, 「흙을 등지고」 등을 발표하였으나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1934년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세 개 신문사에 소설을 응모하였는데, 그 중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1등으로 당선되고, 《조선중앙일보》에 「노다지」가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등단한 해 「금따는 콩밭」을 비롯하여 「만무방」, 「봄봄」 등 단편 10편과 수필 3편을 발표하며 의욕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다.
고향에 학당을 세우고, 야학을 통한 농촌계몽운동에도 관여한 바 있는 김유정은 농촌과 농민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등단 이전부터 앓고 있던 폐결핵이 악화되어 1937년 3월, 2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제목은 《동백꽃》.
【여행】남이섬에서 산책과 점식을 마치고 춘천의 김유정 문학촌에 도착했다. 먼저 문학촌내 낭만우리에서 기획전시중인 정현우 展을 보았다. 색연필로 색감있게 잘 그렸다. 김유정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은 소설가 전상국 강연을 듣은 후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생가와 기념전시관)을 들렸다.
【여행】남이섬에서 산책과 점식을 마치고 춘천의 김유정 문학촌에 도착했다. 먼저 문학촌내 낭만우리에서 기획전시중인 정현우 展을 보았다. 색연필로 색감있게 잘 그렸다. 김유정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은 소설가 전상국 강연을 듣은 후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생가와 기념전시관)을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