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 ~ 1962] 유학자·독립 운동가. 호는 심산(心山)이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워 문장에 뛰어났다. 1909년 성명 학교를 세워 교육 사업에 힘쓰다가, 3·1 운동 이 일어나자 전국 유학자들이 한국 독립을 호소한 '유림단 진정서'를 만들어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보냈다.
그 해 4월 임시 정부 의정원이 되고, 귀국하여 독립 운동 자금을 모으다 잡혀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나온 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 운동지 《천고》와 《사민일보》를 만드는 한편 '
서로군'을 조직,
쑨원(孫文)과 교섭하여 운동 자금을 원조받기도 하였다.
1925년 임시 정부 의정원 부의장에 당선된 후 일본 관헌에게 잡혀 대전 형무소에서 복역중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에는 성균관 대학을 세워 초대 학장이 되었으며, 이승만 독재주의 반대 운동을 벌였다.
대한 민국 건국 공로 훈장 중장(지금의 건국 훈장 대한 민국장)이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