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888 조선 후기의 화가. 처음의 이름은 영시(永詩)이고, 자는 일소, 호는 일호이며 본관은 의령이다.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의 5대 손이며, 부사 남진화의 아들로 서울의 남촌에서 살았다. 벼슬은 종실과 외척에 대한 사무를 담당하는 정3품의 도정을 지냈다. 그림 그리는 솜씨가 뛰어났는데, 특히 나비 그림을 잘 그려, 조선 시대 나비 그림의 제 일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나비 그림은 곱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였으며, 특히 가는 붓으로 정확하게 묘사한 부분에 그의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력이 돋보인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남긴 작품이 상당수 있는데, 대부분 나비와의 조화를 위하여 그려 넣은 국화·패랭이· 모란· 나리 등 여러 종류의 꽃 그림과 바위· 고양이 따위로 이루어진 좁고 긴 세로 폭의 그림이다. 이 그림들은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사생적(寫生的) 화풍을 나타내고 있다. 여러 종류의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모습, 꽃에 앉아 있는 모습 등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여, 가는 붓을 이용하여 곤충 표본을 보는 듯 정확하고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꽃은 탐스러운 모란꽃·등나무꽃 따위를 가는 붓을 이용하여, 물체의 윤곽을 가늘고 엷게 두 줄의 선으로 그린 다음 그 가운데를 색칠하는 기법인 구륵법으로 그렸고, 바위· 난초 따위는 수묵화 기법으로 그렸다. 동물 그림에서도 가는 붓을 이용하여 기량 있는 사실적 묘사를 하였다. 또한 나비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을 담은 자신의 시문으로 화폭의 윗부분을 장식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군접도》는 4폭으로 되어 있는데, 여러 종류의 나비가 150마리 정도 그려져 있다. 그는 평생 동안 나비와 꽃 그림만을 즐겨 그려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조선 말기의 사실적이면서 장식성이 강한 화풍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남계우의 대표작은 《군접도》(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를 비롯하여, 《화접도대련》(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화접묘도》(손세기 소장) 《석화접도대련》( 간송 미술관 소장) 《추초군접도》 《격선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