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에서 1865년까지 미국의 남부와 북부 사이에 일어났던 내전.
당시 서부의 개척에 따라 각기 다른 산업적, 사회적 기반을 가진 남부와 북부의 대립이 심해졌다. 노예 제도를 기반으로 플랜테이션(싼 노동력 을 이용하여 특정 농작물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일)을 경영하는 남부 사회는 산업 혁명 이후 영국의 목화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는 데 대비하여 노예제의 확장을 꾀하게 되었다.
한편 북부는 점점 발달하는 공장 생산의 유력한 시장을 서부에서 발견했으므로 남북의 대립은 1850년대에 이르러 더욱 심해졌다.
원인
남북 대립은 먼저 보호 관세 제정에서 나타났는데, 북부는 공장 육성을 위해 외국 상품의 침투를 막고자 그것에 적극 찬성하였으나 남부는 반대했고, 영국과의 관계도 자유 무역 을 주장하게 되었다. 노예 문제에 있어서도 남부가 절대적 필요성을 주장한 데 대하여 북부는 인도주의를 내세워 그 것을 반대하였다. 그것은 마침내 정치적 대립으로 발전하여 북부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은 연방주의를, 남부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은 분립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부의 공업의 우세에 힘입어 1860년에는 공화당의
링컨이 대통령 으로 당선되었다. 그러자 남부는 분립 운동을 일으켜 남캐롤라이나를 선두로 11개 주가 아메리카 연방을 세워 데이비스(Davis, Jefferson)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북부는 그것을 파괴 행위로 규정하여 1861년에 남부에 선전 포고를 하였다.
결과
전쟁은 처음에는 남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었으나, 그 뒤 형세가 변하여 북군이 우세하게 되어 1865년에 남부의 수도 리치먼드가 함락됨으로써 끝을 맺었다.
그 동안에 링컨은 노예 해방령을 선포하여 근대 사회를 이룩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제2차 아메리카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그 전쟁은 북부의 산업 자본의 승리로 돌아갔고, 그로 말미암아 노예 제도 가 폐지되었다.
남북 전쟁 이후 미국은 근대 국가로서 통일을 완성하여 더욱 강화되고, 자본주의 국가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