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에 있는 굴. 고려 말의 충신이었던
남을진이 고려에 대한 자신의 충절을 지키기 위해 이 곳에 숨어들어 은거하였다.
남을진은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1345~1394) 때 첨지로 있었는데,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지조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이성계는 고려 말 무신으로, 우군 도통사였던 그는 1388년(우왕 14)에 왕명을 받고 요동을 치러 갔다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되돌려 당시의 수도였던 개경으로 쳐들어왔다. 이것이 위화도 회군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성계는 왕을 쫓아내고 조선 왕조를 세우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몽주가 살해당하고 공양왕이 폐위당하자 고려가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 때 남을진을 포함하여 고려 시대의 충신들 72명이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에 모여 살게 되었다. 이들을 ' 두문동 72인'이라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후 두문동 72인을 설득하여 자신에게 충절을 바치도록 하려고 애써 보았으나 두문동 72인은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성계는 그들을 뛰쳐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두문동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하게 되었다. 두문동 72인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대부분 불에 타 죽게 되었으며, 남을진은 이 때 동굴 속으로 숨어들어 은거하면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남을진에게 사천백이라는 벼슬을 내리며 조정에 나오도록 설득했지만, 남을진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이 동굴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
후에 사람들이 그의 지조를 기리어 그가 숨어 지내던 이 동굴을 남선굴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동굴 윗부분에는 지금도 남선굴이라는 글자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