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
[100 세트 한정] 행운의 2달러 스타노트+네잎클로버 컬렉션
35% 19,800원 12,800원
|
|
▣ 백과사전
|
|
|
전라 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성. 사적 제298호로 지정되었다. 돌로 쌓아올린 이 성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으나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전기의 《동국여지승람》에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하여 이 성이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동국여지승람》 '남원고적조'와 '성곽조'에서 남원성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읍성의 석축 둘레는 8,199척, 높이 13척이며, 그 안에 우물 71개소가 있다."는 것과 " 선조 30년(1597)에 성을 크게 개축하였고, 4개의 문이 있다."는 기록 등이 있다. 남원은 통일 신라 시대의 9주 5소경 중 하나인 남원경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조선 시대에는 군대 진영을 이 곳에 배치하였다. 그러므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라 할 수 있으며, 남원성은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1597년 5월에 성이 개축된 후, 그 해 8월의 정유재란 때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이 이 곳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은 크게 패했지만, 끝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죽은 전사자들의 무덤이 '만인의총'이란 이름으로 북문 쪽에 마련되었다. 오늘날 만인의총은 향교동으로 옮겨졌으며, 4개의 성문 과 성벽은 거의 헐린 상태로 남아 있다.
|
◈ 조회순
|
|
2024.01.04
|
|
|
【향토】
섬진강유역에 속한 남원은 교통의 중심지와 전략상 요충지로서 이점을 잘 활용하여 줄곧 거점지역을 이루었다. 통일신라 신문왕 5년(685) 처음으로 남원에 소경을 설치하고 여러 주와 군의 민가를 이주시켰으며, 신문왕 11년(691)에는 남원성을 쌓았다. 중국 장안성과 흡사하게 바둑판처럼 정전법이 시행된 남원성이 축성된 것이다.
|
|
|
|
◈ 최근등록순
|
|
2024.01.04
|
|
|
【향토】
섬진강유역에 속한 남원은 교통의 중심지와 전략상 요충지로서 이점을 잘 활용하여 줄곧 거점지역을 이루었다. 통일신라 신문왕 5년(685) 처음으로 남원에 소경을 설치하고 여러 주와 군의 민가를 이주시켰으며, 신문왕 11년(691)에는 남원성을 쌓았다. 중국 장안성과 흡사하게 바둑판처럼 정전법이 시행된 남원성이 축성된 것이다.
|
|
|
|
[광고] |
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
|
▣ 카달로그 작업
|
▶ 지식지도 |
▷ 원문/전문 (없음) |
▷ 시민 참여 콘텐츠 |
▷ 관련 동영상 (없음) |
|
▣ 참조정보
없 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