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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도가(道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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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道家)
중국 시황제 이전의 춘추 전국 시대 이래유가(儒家)와 함께 중국 철학의 2대 사조를 이루었던 학파.
▣ 지식지도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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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과사전
중국 시황제 이전의 춘추 전국 시대 이래 유가(儒家)와 함께 중국 철학의 2대 사조를 이루었던 학파.
 
이 사상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노자(老子)는 도(道)와 덕(德)의 개념으로 우주 본체를 설명하였는데, 후에 노자의 도덕을 논하는 학자들을 도덕가라고 부르던 것이 줄어서 도가로 일컫게 되었다.
 
넓은 뜻의 도가에는 나중에 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하여 종교적인 형태를 가미한 도교를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도교와 도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별개의 것으로 간주한다.
 
사실 도교는 후한 시대의 장도릉에 의하여 처음 세워졌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노자의 사상뿐만 아니라 신선 사상·역리(주역의 법칙)·유교·불교 그리고 심지어 민간 신앙까지도 받아들여 일종의 종교 사상으로 체계가 잡히게 되었다. 도교에서 주장하는 중심 사상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신비적인 방술을 닦음으로써 스스로 진인· 신인 ·선인이 되는 것인데, 이렇게 교리를 지켜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생활, 즉 무위 청정한 생활을 하게 되면 도를 깨달아 불로 장생에 이른다는 것으로 다분히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도가 사상은 노자 사상을 관윤자와 열자가 계승 발전키고 장자가 집대성한 것으로, 종교 사상이 아니라 철학 사상이다. 도가에서는 인간 타락의 근거를 찾아 내어 없애 버리고, 참지혜를 통하여 사람이 힘들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이상적인 삶을 얻는 비결이라고 생각하였다. 3~4세기에는 도가 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발전한 현학파와 명리학파도 파생되었는데, 이들도 도가에 포함시킨다.
 

도가의 사상적 배경

도가의 개조라고 할 수 있는 노자는 주나라 조정에서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이었으므로, 그는 전통적인 학술 사상과 역사 등을 꿰뚫어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의 전쟁의 참상과 도덕의 붕괴 정치의 혼란 상황 등을 피부 로 느끼면서, 이러한 고통을 가져온 근본 원인으로 서주문화 자체를 비판하고 본래의 편안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반박 귀진(反樸歸眞)'의 사상을 이루어 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도가 사상이 형성되게 된 배경이 되었다.
 

도가 사상의 우주와 자연 질서

노자는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불변한 도가 아니요,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초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모태로 보아 무와 유를 상호 의존적인 개념으로 보고, 유보다는 무를 더 높은 위치에 두었다. 또, 인간 과 우주를 전혀 무대한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을 대우주에 대응하는 소우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인간과 우주 사이에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한 일치점이 있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은 서로 융합하여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자연 질서에서의 도의 법칙은 "되돌아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다."라는 말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이 시작한 시점으로 계속 돌아오려고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가 사상의 인간과 사회

초기의 도가 사상에서는 의도적인 인간의 행위는 자연 질서의 조화를 깨뜨린다고 생각하여 사람의 힘이 끼어들지 않은 자연스러운 행위인 '무위'를 강조하였고 원시 농경 사회에서 사람이 자연의 질서 안에서 아무런 허영이나 물욕 없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상적인 삶으로 보았다. 즉, 무욕·허(虛)·무(無) 등 부정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연에 순응해야 하며, 이 때만이 외부의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절대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도가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 만물이 근본적으로 하나이므로 만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의견 대립이 있을 수 없는데, 이처럼 관념의 상대성을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장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인 성인(聖人)이었다. 삶과 죽음 에 대한 도가의 사상은 낮과 밤이 번갈아 오는 것처럼 주기적인 단계의 하나일 뿐이라고 보았다.
 

도가 사상의 수용

도가 사상은 삼국 시대에 우리 나라에 전래되었는데, 고구려는 624(영류왕7)년에 도입되었고, 신라나 백제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수용된 도가는 민족 고유의 사상인 신도 사상 (神道思想) 또는 선도 사상(仙道思想)의 바탕 위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에 도교와의 구별이 조금 모호한 점이 있다. 그러나 고려 말 조선 초에 성리학을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노(老)와 불(佛)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 이유를 밝히고자 비로소 도가의 사상, 즉 종교적인 요소 말고 근본을 이루는 철학 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조선의 건국 공신인 정도전은 《심기리편》에서 유·불·도를 자세히 연구 분석하고 비교 검토하여 철저히 비평하였다. 그는 불은 '심학(心學)'으로, 유는 '이학(理學)'으로, 도는 '기학(氣學)'으로 규정하고, '기'보다 한차원 높은 '이'를 알지 못한 채 '기'만을 논한 도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도가 사상에서의 '기'는 유가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이'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볼 수 없고, 오히려 '이'를 뛰어넘어 모든 것의 근원인 형이상학적 실체이며 본질인 동시에 현상 그 자체인 궁극적 실재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정도전의 비평은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그 후 서경덕은 유가적인 기초 위에서 '기'를 보지 않고 '이'와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기'의 개념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도가 사상 연구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을 보여 주었고, 이이(李珥)는 그 동안 낮게 평가되었던 노자를 새롭게 재평가하기도 하였다.
 

도가에 관련된 경전

①《사기》는 사마천이 썼는데, 당시에 전해 내려오는 설들을 모아서 노자에 대한 전기를 기술하였다.
②《노자》 또는 《도덕경》은 기원전 3세기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데, 노자 한 사람이 지은 것으로 보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저술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적·정치적 개혁을 목적으로하여 군주의 마땅한 바에 대한 지침을 다루고 있는데, 압축된 문체를 사용하여 간결하게 기술되었다.
③《장자》는 개인의 생활과 본성을 다루었고, "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이 세상에서 귀하고 천한 것의 구분이 없다."는, 즉 도는 우주의 생성 원리인 동시에 대원칙이므로 이 도로부터 생성된 만물은 차별이 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만물 일제(萬物一齊)의 사상을 주장하였다.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 참조 원문/전문
장자 莊子 인문/사회과학 장자(莊子) (268) 열선전 列仙傳 인문/사회과학 (88) 도덕경 道德經 인문/사회과학 노자 (84) 갈관자 鶡冠子 인문/사회과학 (48) 열자 列子 인문/사회과학 열구자 (47) 문시진경 文始真經 인문/사회과학 관윤자 (關尹子) (27) 문자 文子 인문/사회과학 (15)
 
▣ 참조 카달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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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공동으로 일을 처리하던 사무실 또는공동 창고.
(용어) 조선 시대에 임금님이 행차하실 때 미리행차할 목적지까지의 길을 깨끗이 쓸어 내고 길 가운데에는엷게 황토를 깔아서 임금님의 수레인 어가를 인도하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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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