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쌓아 올려 만든 높은 무덤. 토총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석총이라고도 한다.
환석·할석 또는 절석으로 무덤의 겉을 쌓아 올렸는데, 특히 분구를 높게 쌓아 올린 특징이 있다.
무덤의 내부에 돌이 사용되었어도 분구가 흙과 모래로 쌓아 올려졌으면 토총·성토총·봉토분이라고 한다.
분구의 일부나 무덤의 겉부분에 환석이나 절석을 사용하였어도, 외부 구조의 주요 부분이 성토되어 있는 것도 토층이다. 예컨대 바람과 비로 무덤의 겉을 덮은 흙과 모래가 흘러 나가고 돌로 된 무덤의 내부만이 드러나는 경우, 이를 돌무덤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돌무덤은 선사 시대의
돌무지무덤·
고인돌·
돌널무덤 등을 비롯하여 고구려의
장군총 등도 포함하고 있다.
선사 시대의 돌무지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넣거나, 구덩이 없이 그냥 시체를 놓고 그 위에 돌을 쌓은 무덤이 흔했는데, 이러한 선사 시대의 돌무지무덤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고대 문화가 번영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데, 신라의 경주
봉황대분을 비롯하여
금관총·
금령총·
식리총·
서봉총 등이 모두 돌무지무덤이다.
돌무지무덤의 내부 구조는 점토와 나무로 만든 덧널 안에 나무널을 모시고 있다.
이 밖에 돌무지 무덤은 아라비아 각지, 요르단 지방, 예니세이 지방의 유목민 사이에도 유해를 모시던 방법으로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가끔 헬라스 전기나 미케네 시대의 그리스 에서도 돌무지무덤이 발견된다.
고인돌은 돌을 쌓은 형식에 따라 북방식·남방식·개석식으로 나눌 수 있고, 우리 나라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그 숫자가 주변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나라의 고인돌은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돌널무덤은 판석을 짜맞춤식으로 만든 상자 모양의 무덤을 말하는데, 괴석이나 냇돌로 쌓은 것도 있다.
돌무덤은 초기에는 단이 없는 무기단식에서 비석의 기초가 되는 단을 만든 기단식으로 발전하였고, 다시 널방에 이르는 널길이 있는 기단식 무덤으로 발전하였다.
절석을 사용한 절석총은 그 수가 별로 많지 않고 발견되는 지역도 한정되어 있다. 절석으로 단을 만들고 그것을 몇 단 쌓아 올리는 동안 피라미드형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가장 발전된 형태로는 광개토왕릉으로 보이는
장군총이 있다.
장군총은 잘 다듬은 화강암을 7단으로 쌓은 피라미드형으로 제1단에는 3개의 자연석으로 분구 주위를 둘러 쌓은 둘레돌로 세웠으며, 돌방은 제3단의 윗부분을 바닥으로 하는 네모난 상자형이다.
장군총의 규모는 1변의 길이가 약 30m, 높이는 약 13.5m가 된다.
이 밖에도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있는 고구려 전기 고분
태왕릉·
천추총 등도 절석총의 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