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 ~ 1908] 러시아의 작곡가. 노브고로드의 귀족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있었으나, 교육은 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관리였지만, 일가에 해군 출신들이 많아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12세 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가 해군 사관 학교에 입학하였고, 이후 6년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이 기간 중에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 오페라와 베토벤 음악을 접하였고, 특히 글린카 의 《루슬란과 뤼드밀라》를 보고 음악적인 정열이 불타 올랐다고 한다. 그 후 15세 때 카닐레에게 처음 피아노를 배웠고, 작곡도 함께 배웠다. 17세가 되던 1861년에는 카닐레의 소개로 작곡가 발라키레프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에게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배우면서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 해군 학교를 졸업하고 항해에 참가하면서 작곡은 잠시 중단되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항해하였는데, 이 때의 항해 경험은 나중에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항해를 떠나기 전에 손을 댄 곡이 러시아로 돌아오면서 완성되었고, 이 작품이 바로 《교향곡 1번》이다.
《교향곡 1번》은 스승인
발라키레프가 지휘를 맡아 처음 연주되었으며,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에 그는 작곡 활동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민요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동방의 로망스》를 작곡하였는데, 이 곡에는 그의 음악의 특징을 이루는 동양적 정서가 잘 나타나 있다. 1868년에 완성한 《교향곡 2번》은 남미를 항해한 경험에 동방적 분위기가 합하여져 탄생되었다.
1871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교수로 초빙되어 학생들에게 작곡을 가르쳤고, 해군 군악대에서 감독 겸 지휘자로 있었다. 1874년에 《교향곡 3번》이 그 자신의 지휘로 연주되었으며, 같은 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자유 음악원의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05년 학생 봉기가 일어났을 때, 학생측에 서서 정부를 비판한 일도 있었다. 그는 이 일로 교수직에서 쫓겨났으며, 그의 작품은 연주 금지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그 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퇴직 후에는 작곡과 후진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음악원 교수로 재직한 34년 동안 그는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그 중에는
레스피기 ·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와 같은 유명한 작곡가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묘사가 가득하고 명쾌하며 이해하기가 매우 쉽다.
3대 관현악곡인 《에스파냐 기상곡》 《세헤라자데》 《빛나는 일요일》은 여러 장소의 분위기를 뛰어난 관현악으로 묘사해 내고 있다. 오페라 《사드코》 《설희》 《술탄 황제 이야기》 《금계》는 이교적인 내용, 권력에 대한 저항을 소재로 하였거나 러시아 민요 에서 힌트를 얻은 작품들이다.
젊었을 때 얻은 항해의 경험은 오페라와 관현악곡에 표현되어, 바다와 호수의 풍경이 나타나 있다. 《세헤라자데》 《사드코》 《술탄 황제 이야기》는 바다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고, 《보이지 않는 거리 키테슈와 성녀 페브로니아의 이야기》는 호수를 표현한 것이다.
발라키레프 ·
큐이·
무소르크스키·
보로딘과 함께 '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의 한 사람으로, 러시아 오페라· 교향시· 가곡 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서에는 자서전인 《나의 음악 연지 (年誌)》와 《러시아 민요 100곡》 《화성학 실습》 《관현악법 원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