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프로방스 코트다쥐르주(州) 부슈뒤론현(縣)의 도시. 인구는 1990년 현재 약 81만 명이며, 면적은 242㎢이다. 프랑스 제1의 항구 도시로 론강 하구 부근에 있으며 북서쪽 349㎞지점에는 리옹, 북북서쪽 863㎞지점에는 파리가 있다.
지중해 연안의 유럽· 북부 아프리카·근동· 중동 지역은 물론 멀리 인도양 및 태평양 연안의 아시아 지역에서 북해 연안의 서부 유럽으로 가는 물자를 유통시키는 적환점(積還點)이다. 동시에 북해 연안의 서부 유럽이 이들 지역으로 진출하는 전진 기지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마르세유는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 현재까지 계속 꾸준히 성장· 발달하고 있다.
지중해의 해안은 알프스 남단의 석회암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론강 하구에는 기름진 삼각주 가 펼쳐져 있으며, 또한 수심이 깊어 오래 전부터 항만 이 건설되어 항구로 이용되어 왔다. 이후에도 계속 증가하는 물동량으로 연이어서 항만이 건설되었는데, 1966년 이후에는 론강 하구 삼각주에서 포스시와 인근한 베르 석호를 끼고 새로운 항구가 건설되기도 하였다.
마르세유의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가 아니어서 여름철 건조 기간에는 강수량 이 적고 기온이 높으며, 봄과 가을에 강수량이 최고로 많다. 가장 서늘한 기간인 12월과 1월에는 안개가 발생하기도 하며,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프랑스의 대도시 중에서 역사가 가장 깊은 마르세유는 기원전 600년경 소아시아 의 포카이아 지방에서 온 그리스 선원들에 의해 마살리아로 건설된 데서 유래되었다. 기원전 49년에는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에게 함락되었으나 자유 도시로서의 지위는 계속 유지되었다.
그 뒤 수많은 외세의 침입과 페스트 병으로 몇 세기 동안 폐허가 되기도 하였으나 10세기에 이 곳이
십자군 원정의 거점이 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시민들은 점차 자치권을 획득하여 1481년 이 곳 프로방스 지방이 프랑스 왕국의 일부로 통합되었을 때 독립된 행정 체제를 고수하기도 하였다.
군주가 어떠한 법률이나 기관에도 구속받지 아니하고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절대 군주제에 대항하여 도시의 자유를 되찾고자 루이 14세에 항거하여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1792년 이곳에서 파리로 진군하던 혁명가들이 불렀던 행군가인 《
라 마르세예즈》가 오늘날의 프랑스 국가(國歌)가 되기도 하였다.
19세기 후반에 마르세유 는 산업 혁명, 1830년의 알제리 정복, 1869년의 수에즈 운하의 개통 등에 힘입어 '제국의 항구'로써 발달하게 되었으나, 나폴레옹 통치 당시 한때 대륙 봉쇄령에 의해 크게 위축된 때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에게 점령당하면서 구 항구와 파니에르 지구가 파괴당하였으나 줄곧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 전후에 전쟁 기간 중 파괴된 지역을 재건하고 산업을 육성시키며 포스를 중심으로 하는 항만 공업 단지를 건설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마르세유의 시 정부는 행정과 재정의 많은 면에 있어서 중앙 정부와 관련되어 있으나, 시 의회가 주축이 되어 지방 분권적인 역사적 전통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시는 16개의 군으로 나뉘고 이들이 6개의 지구로 묶여 각각의 지구에서 시장을 선출한다.
마르세유에서 가장 오래 된 산업은 15세기에 시작된 비누 제조업이지만 오늘날에는 화학 공업· 건축 자재업·야금업 등이 발달되어 있다. 산업이 다양하게 발달한 중요한 제조업 도시로서 특히 조선업·정유업·철강업이 유명하다. 1966년 이후에는 항구 건설로 인해 석유· 광물 ·천연가스· 컨테이너· 창고업 등의 항구 연관 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항구는 주요 철도와 운하, 파이프 관, 고속 도로 등으로 프랑스와 유럽의 각지에까지 연결된다.
마르세유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주해 옴으로써 다양한 주민 구성, 생활 양식, 문화적 차이를 볼 수 있으며 도시 의 분위기는 개방적이고 변화가 많은 곳이다.
도시의 중심지였던 옛 항구의 오른쪽에는 가장 인상적인 공공 건물로서 상공회의소와 해양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부르즈 건물이 있는데, 1967년에 이 건물 뒤쪽에서 기원전 3~2세기의 그리스 양식의 성벽과 로마 시대의 탑·도로· 항구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항구의 입구에는 13세기의 포르생장 성곽의 유적이, 항구의 다른 쪽 입구에는 포르생니콜라 성채가 있다. 옛 항구 주변에는 이 외에도 1852년에 주교좌 성당 으로 재건된 라마조르 성당, 1660~1750년에 지어진 자선 병원, 시에서 가장 오래 된 16세기 말의 병원 건물인 오텔 디외가 남아 있다. 옛 항구의 남쪽 언덕에는 예로부터 뱃사람들이 수호신으로 받들고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데 성당의 꼭대기에는 약 9m 높이의 성모 마리아상이 세워져 있다.
어린이 박물관을 포함해 여러 개의 박물관이 있으며, 2개의 대학 종합 병원, 약 5만 석 규모의 시립 스타디움과 야외 극장· 수영장· 운동장·해변· 공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