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 ~ 1839] 우리 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서양인 선교사,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
1832년에 조선 교구 교황 대리 초대 감독으로 임명된 뷔리기에르 주교와 함께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위해 소속 교구 주교의 허락을 받고 압록강까지 왔으나, 국경의 감시가 삼엄하여 입국을 포기하였다.
만주 마가자에 머물다가 브뤼기에르 주교가 병으로 죽자,
1836년 정하상의 안내로 서울에 들어와 전교에 힘썼다. 이듬해에는
김대건·
최양업 등을 마카오의 오문 신학교에 유학시켰다.
1839년(헌종 5년)
기해박해 때 충청도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체포되어
앵베르 주교 ·
샤스탕 신부와 함께 한강가 새남터에서 참수당하여 순교하였다.
192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