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초에 몽고족인
칭기즈 칸이 세워 1세기 이상 유라시아 대륙의 큰 영역을 차지했던 세계 역사상 최대의 제국.
역사
12세기 말 몽고 부족의 테무친[鐵木眞]이 1189년경 부족 동맹의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주변 여러 유목 부족을 통일하여 유목 왕국을 세움으로써 칭기즈 칸의 칭호를 받았다.
이어
서하(西夏)와
금나라를 정복하여 황하 이북의 땅을 지배 아래 넣고, 서역으로 원정하여
서요(西遼),
호라즘샤조(朝) 등을 차례로 치다가 1227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칭기즈 칸은 서방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뒤 유목 지역을 그의 아들과 아우들에게 나누어 주어 다스리게 했다.
제2대
오고타이는 금나라를 멸망시켰고, 손자
바투는 멀리 유럽 지역까지 원정하였다.
또 제4대
몽케는
훌라구에게 서아시아를 정벌하게 하여 1258년에는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티베트를 복속시켰다.
그렇게 하여 칭기즈 칸으로부터 4대 약 50년 동안에 동은 중국으로부터 서로는 지중해에 이르는 대제국이 성립하였다.
몽케가 죽자 황제 자리의 계승을 두고 다툼이 일어나 분열되기도 하였으나,
쿠빌라이가 제5대 대칸[大汗]에 오르자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중심으로
원나라를 세워 제국의 종주권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종주국인 원나라와 네 한국(汗國)의 연합 체제로써 대몽고 제국을 이룩하였다.
세조가 죽은 뒤에도 약 30년간은 전성기를 누렸으나, 마침내는 제위 계승을 둘러싼 다툼과
홍건적의 난 등으로
명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사회·경제·문화
몽고인은 무력으로써 중국을 정복하였으나, 경제, 문화, 사회면에서는 중국을 변혁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몽고 는 민족 차별 통치책을 문화면에 적용하여 한 문화를 천시하고, 몽고어, 몽고 문자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하였다.
또 유학자들을 천대함으로써 학자들이 관직에 나가기를 꺼렸고, 희곡, 전기, 소설 등에 힘을 기울여 그 방면이 크게 발전하였다.
농업에는 목화 재배가 크게 성하였다. 그러나 농업보다는 상업을 중시하여 농업은 송대보다 발전하지 못하고, 상업 이 발달하여 상업권이 확대되고 지폐가 통용되었다.
이들은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역참제를 확립 운영하였으며, 이로 인해 동서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몽고와 우리 나라의 관계
고려
고종때 몽고의 거란 유민 토벌이 계기가 되어 몽고와 처음으로 국교가 시작되었다. 그 뒤
1225년에 몽고 사신이 돌아가다가 국경에서 암살당한 사건이 일어나자, 몽고는 그것을 핑계삼아 고려 침략을 시작하였다.
1231년(고종 18년)에 제1차로 침공한 이래 1257년까지 일곱 차례나 고려를 침공 유린하였다.
고려는 28년간에 걸친 항쟁 끝에 몽고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고려
원종 이후
공민왕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정치적 간섭을 받아야 했다. 한편 문화적으로는 많은 문물의 교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