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37] 고려 인종 때의 재상.
본관은 남평(南平), 초명은 공미(公美), 시호는 충의(忠懿)로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익(翼)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 직사관(直史館)이 되고 시중(侍中) 최사추(崔思諏)의 사위가 되어 가난한 집 출신이나 호화롭게 지냈다.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으로 요(遼)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진귀한 물건을 사사로이 선사하여 큰 폐단이 되었다.
1117년(예종 12) 전중소감 우승선 겸 태자 우찬선(殿中少監右承宣兼太子右贊善) 등을 거쳐 1123년(인종 1)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으나 한안인을 중심으로
이영(李永),
정극영(鄭克永) 등과 더불어
이자겸을 반대하다가 충주로 유배되었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몰락으로 다시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재직중
묘청(妙淸)의 천도 계획에 찬동했다가 후에 묘청 이 난을 일으키자 묘청을 천거하여 국사(國事)를 그르치게 한 일로 탄핵을 받아 수태위 국자감 판사(守太尉國子監判事)로 좌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