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0 ~ 16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치운. 호는 운와(雲窩).
1584년(선조 17) 친시 문과 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에 등용되고, 이어서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성균관 사예가 되었다. 이어서 병조 참지·예조 참의·호조 참판· 대사간 등을 지내고, 1606년(선조 39)에는 예조 판서로서 진주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고 광해군을 지지하던 파가 집권하면서 경기도 관찰사·좌참찬 등을 역임한 뒤 이조 판서와 우의정에 올랐다. 이 때 광해군의 폐모론에 적극 찬동하여, 대비의 호를 삭제하고 서궁에 유폐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로 인해
인조 반정 후 관직이 삭제되었다.
갑자기 질병을 얻어 그 병으로 죽고, 이어서 그의 처와 장남이 횡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