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1 ~ 1761] 조선 영조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이지(履之). 시호 정헌(正獻).
1740년(영조 16)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급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5년 뒤에 동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동래 부사·경상도 관찰사· 대사성 등을 지냈다.
대사간으로 있을 때, 신임 사화에 화를 입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주장하면서 화를 가한 소론에 대해 중벌을 주장하다 거제로 유배되었다.
1751년 풀려 나와 대사헌·이조 판서· 우의정이 되었다가,
사도 세자가 평양으로 멀리 놀러 나간 문제로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