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 친일 민족 반역자.
경상 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민씨 일파에게 처형된 후 죄를 기록한 장부인 죄적에 이름이 올라 어머니와 함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1882년 승려가 되었다.
1885년 아버지의 친구인 밀양 부사 정병하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도피하였는데, 거기에서 망명 중이던
안경수·
김옥균 등에게 의지하였다.
1887년
이토오 히로부미의 양녀가 된 후에 원래의 이름이었던 '분남'을 '정자'로 바꾸고 양아버지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수영·사격술·변장술 등의 밀정 교육과 사상적 세뇌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1894년에 귀국하여 우리 나라의 국권을 박탈시키기 위해 고종에게까지 접근하는 등 일본 세력의 비호를 받으며 우리 나라에 대한 반민족 행위를 자행하였다.
우리 나라의 국권 박탈을 위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계속하다가 1910년 이후에는 헌병 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의 앞잡이로 있으면서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섰다. 1920년에 일본군이 시베리아로 출병하였을 때에는 평뎬 총영사관의 부탁으로 만주와 시베리아를 오가면서 군사 스파이로 활약하였고, 특히 말을 타고 다니면서 떼를 지어 다니던 중국의 마적단을 포섭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 후 일본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 나라를 다스리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최고 행정 관청인 조선 총독부의 마루야마의 지령을 받고, 만주와 중국 본토 등지에서 우리 독립 투사들을 체포하는 데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