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 세운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경계비.
1712년(숙종 38년)에 청나라가 국경을 분명히 하자고 요구하자, 조정은 접반사
박권 일행을 보내어 백두산에 올라 회담하고, 압록강과
토문강의 분수령인 산정 남동쪽 4km, 해발 2,200m 지점에 정계비를 세웠다.
그 후 1880년(고종 17년)에 이르러 청나라는 토문(土門)이 두만(豆滿)을 뜻한다고 고집하여 논란이 되었다.
1909년(융희 3년)에 대륙 침략의 야욕을 품은 일본이 청나라와 회담한 끝에, 토문강에서 훨씬 남쪽에 있는 두만강이 한·청 국경이라고 일방적으로 양보함으로써 우리의 영토였던 간도(間島) 전 지역을 억울하게 잃고 말았다. (
간도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