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 15책, 목판본) 목판본으로 이루어진
이항복의 시문집.
이항복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56년(명종 11)에 태어나 1618년(광해군 10)에 사망하였다. 백사는 이항복의 호이다. 또한 '오성 대감'이라고 하여 ' 한음 대감'으로 잘 알려진 이덕형과 함께 많은 이야깃 거리를 남겼다.
임진왜란 때는 궁궐에 끝까지 남아 선조를 의주로 모시고 가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이 때의 공으로 1602년에 오성 부원군으로 봉해졌다.
이러한 이항복의 시문집인 《백사집》은 이항복이 사망한 후인 1629년(인조 7)에 이현영과 이명준이 강릉에서 간행한 강릉본과, 진양에서 정충신이 간행한 진양본이 있다. 또한, 1630년(인조 8)에는 장유가 편집한 중간본도 있다.
이것을 1726년(영조 2)에 이항복의 5세손인 이종성이 마지막으로 정리하여 간행하였다. 이 때 종성은 강릉본과 진양본을 합하는 것 외에도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던 이항복의 유시 (遺詩) 40여 수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글인 일문(逸文) 15편을 모아 추가로 넣었다.
강릉본이나 진양본, 중간본 모두 목판으로 인쇄되었으며 최종본은 30권 15책으로 되어 있다.
먼저 1~4권은 시와 가영(歌詠)과 만(挽)으로 되어 있다. '가영'이란 시와 노래를 읊는 것을 말한다. 또한 '만'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가사를 말한다.
다음의 5~8권은 차(箚)로 되어 있다. '차'란 간단한 상소문을 말하는 것이다.
9~12권은 계(啓), 13~14권은 의(議), 15권은 잠(箴)·명(銘)·서(序)·기(記)·발(跋)로 되어 있다. '계'란 임금에게 보고하는 서류의 한 종류를 말한다. 또한, '의'는 일의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글을 말한다. '잠'은 훈계하는 뜻을 적은 글이며, '명'은 쇠나 돌에 적힌 글을 옮겨 놓은 것이다. '서'는 서문의 줄인 말로 머리말을 뜻한다. '기'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역사적인 시설의 자취를 적은 글이며, '발'은 책의 내용이나 간행에 관계된 사항을 간단하게 적은 글을 말한다.
다음의 16권은 잡저(雜著), 17권은 신도비명(神道碑銘)으로 되어 있으며 18~20권은 묘갈명(墓碣銘)으로 되어 있다.
'잡저'란 일정한 격식이 없는 여러 가지의 저서를 말한다. '신도비명'은 종이품 벼슬아치의 무덤 근처의 큰길가에 세워 놓은 비에 적힌 글을 말한다. 또한 '묘갈명'이란 묘 앞에 세우는 작은 돌에 적힌 글을 말한다.
21권은 행장(行狀)·유사(遺事)· 제문(祭文)으로 되어 있으며, 22권은 서독(書牘), 23권은 조천기문(朝天記聞)으로 되어 있다. '행장'이란 죽은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그린 글이며, '유사'란 죽은 사람이 남긴 생전의 일을 적은 글이다.
또한, ' 제문'이란 죽은 사람을 기리는 글을 말하며, '서독'은 편지글을 말한다.
《백사집》에서 나머지 24~30권은 부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글을 통해 이항복은 평소에 자신이 품고 있었던 여러 가지의 뜻을 나타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당시에 백성들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과 그에 대한 옳고 그름을 글로 적었으며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특히, 「일출도문만사회(一出都門萬事灰)」는 1619년(광해군 11)에 귀양을 가면서 읊은 것으로, 후에 광해군이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철령 높은 봉에 흘러가는 저 구름아.
외로운 이 마음을 비삼아 띠워다가
님 계신 구중 심처에 뿌려본들 어떠하리."
이 때 이항복은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 대비 를 폐위하자는 대북파에 반대하여 상소를 올렸다가 귀양을 가게 된 것이었다. 특히, 이 귀양가는 그를 수행하던 정충신이 그 수행기를 적은 《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과 함께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13~14권에 실린 의는 주로 임진왜란 후에 백성들이 살아가는 것과 망가진 국토를 살리는 것에 대해서 이항복이 개선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6권의 잡저에서는 정여립의 반란에 대해 썼다. 여기에는 정여립 의 난을 핑계로 서인이 동인을 몰아내는 기축옥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나타냈다.
또한, 임진왜란의 초창기에 있었던 일을 정리한 「임진변초사(壬辰變初事)」와 이순신, 유성룡, 권율 등 임진왜란 때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 대해서 정리한 「난후제장공적(亂後諸將功蹟)」 등이 실려 있다.
23권의 「조천기문」에는 1598년에 이항복이 조선의 사절로서 명나라에 갔을 때의 일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놓았다. 따라서, 여기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과 명나라와의 관계가 여러 가지 면에서 나온다.
이 밖에도 부록에는 친지들과 제자들이 기록한 기(記)와 지(識) 등이 실려 있다.
백사집은 규장각 등에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