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북도 상주시 모동면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금돌성(今突城)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금돌성에 대해서는 기록에만 나올 뿐 그 위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사를 통하여 백화산성이 바로 금돌성이라는 것을 밝혀 냈다. 백화산의 높이는 932m이다. 백화산성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이루어져 있다. 원래는 충청도의 황간까지 그 경계가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백화산성의 구조는 내성과 외성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내성은 백화산의 꼭대기 부분을 타원형으로 에워싸고 있으며, 안쪽에는 궁궐의 터로 쓰이던 넓은 대지가 있다. 또한, 2단으로 이루어진 12m 높이의 석축이 남아 있다. 궁궐터는 300평 정도 되는데, 지금은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여기에서 신라의 기왓장이 발견되었다. 외성은 내성에서 내성이 있는 산의 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보문곡(寶門谷)이라는 골짜기를 따라 2㎞쯤 내려 가며 뻗쳐 있다. 외성의 입구에는 성문터가 남아 있으며, 그 주위에 폭 15m에 길이가 200m나 되는 거대한 돌 무더기가 있어 당시의 웅장함을 보여 주고 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백화산성은 신라 시대 태종 무열왕이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서 쌓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열왕은 친히 금돌성으로 행차하여 한 달 동안이나 머물렀다고 한다. 성에 머무는 동안 무열왕은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명의 군사를 보내고 금돌성에 남아 군사들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그 후 백제가 망하고 나자 무열왕은 이 곳을 떠나 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갔다고 한다. 조선 시대 초기의 지리지인 《경상도지리지》의 백화산성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백화산성의 둘레가 1,940보였다고 나온다. 또한, 계곡이 하나에 천(泉:성의 하나)이 다섯 개였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이전에 벌써 백화 산성이 없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