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 ~ 1887] 러시아의 작곡가·화학자·사회 개혁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카프카스의 에메레티아 국왕의 후예인 그루지야의 왕자 게데아노프 공작과 여군의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농노였던 프르피리 보로딘의 호적에 올렸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어머니 밑에서 안락하게 자라며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나, 사회 활동에서 규제를 받았다. 이러한 사회적 불공정이 그의 민주 사상의 원천이 된 것이다.
보로딘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첼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루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9세 때부터는 작곡을 시작하여 폴카를 작곡하고, 13세 때 플루트 협주곡을 썼다고 한다. 17세 때인 1850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의과 대학에 들어가 1856년까지 화학과 의학을 공부하여 우등으로 졸업하였으며, 그 가운데 실내악을 즐기고 작곡 활동을 계속 하였다. 졸업 후에는 육군 병원에서 병리학 조수로 근무하였으며, 1858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인 1859년에는 계속 화학과 의학을 연구하기 위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학하였으며, 서유럽 각지에서 특히 낭만파 음악 을 접하게 되었다.
29세 때인 1862년에 귀국한 후 그는 모교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조교수가 되었고, 여기서 화학자 지닌의 제자가 되어 유기 화학을 계속 연구하였으며, 틈틈이 작곡도 하였다. 1864년에는 모교의 정교수가 되었으며, 이 때부터 그는 중요한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또한 1862년에, 19세기에 러시아· 보헤미아· 북유럽 등지에서 국민주의적 음악 운동을 일으킨 국민 악파의 지도자
M.A. 발라키레프 (1837~1910)와 만났다.
발라키레프는
글린카·
다르고미슈스키의 뒤를 잇는 러시아 국민 음악의 지도자로서, 신러시아 악파(樂派), 즉 러시아 5인조의 중심 인물이다.
보로딘은 발라키레프에게 작곡법을 배워 음악인으로서 더욱 소양을 쌓았다. 또한 그의 권고에 따라 러시아 국민 음악을 건설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노력할 방침을 세웠지만, 과학자로서의 교수와 연구, 그리고 여성 의학을 위한 사회 활동으로 너무 바빴다. 그래서 휴가를 얻었을 때에나 병으로 누워 있을 때에도 주로 작곡을 하였다.
보로딘은 무료 음악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러시아 민요에 많은 관심을 가져 《40곡의 민요집》을 펴냈고, 그 외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보로딘은 발라키레프를 중심으로 하여 M.P. 무소르크스키, C.A. 큐, N.A. 림스키코르사코프 와 함께 러시아 5인조의 멤버가 되어 활동하였다. 그는 23세 때 알게 된 친구인 무소르크스키와 교분을 두텁게 하여 러시아 국민 음악을 창조하는 데에 이바지하였으며, 큐를 대리하여 익명으로 러시아 5인조를 위한 비평 활동도 하였다.
보로딘은 1862~1867년에 교향곡 제1번 을 작곡하였는데, 이것은 러시아 5인조 작곡가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나오게 된 작품이다. 1869년에는 그의 교향곡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만한 교향곡 제2번 B 단조의 작곡을 시작하였다. 이 교향곡은 4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규모가 웅대한 것이 중세 러시아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열렬한 국민적인 특질을 지닌 전체적인 분위기는, 러시아적인 선율과 리듬이라고 볼 수 있다. 1877년 2월 14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으며, 런던에서는 1896년에 초연되었다.
보로딘은 러시아의 민족적 영웅으로부터 제재를 구하고, 민족 음악의 요소를 끌어들여 동방적 시정이 넘치는 음악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는데, 그 가운데 오페라 《이고르 공(公)》이 유명하다.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가, 보로딘이 죽은 이후에 러시아 민족 음악의 대표적 작곡가인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림스키코르사코프 의 제자로서 러시아적인 웅대한 작품을 쓴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가 완성시켜 1890년 10월 23일에 초연되었다. 《이고르 공》은 러시아 5인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V. 스타소프의 대본으로, 이고르 공이 중앙 아시아를 원정한 내용을 다룬 4막의 그랜드 오페라이다. 그랜드 오페라란 19세기 프랑스 의 특징적인 양식으로서 코믹 오페라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내용은 엄숙하고, 주로 서사시적·역사적 성질의 비극을 다룬다. 또한 합창을 중시하고 발레를 도입하였으며, 독창 과 합창이 서로 뒤섞이는 극적인 장면을 정하여 놓는다.
《이고르 공》의 대략의 내용은 12세기에 세베르스키의 이고르 공이 군대를 거느리고 동양의 야만족을 정벌하러 갔다가 실패하여 포로가 되었는데, 거기서 탈출하여 돌아오기까지의 사건을 다룬 것이다. 보로딘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묘사 하기 위하여 동양 음악에 대한 연구 자료를 구하여 이 작품을 썼다. 《이고르 공》의 제2막에 나오는 《폴로비치안 춤》은 자주 연주되는 춤곡이다. 이 춤곡에는 합창이 있는데, 연주회에서는 합창 없이도 많이 연주한다. 동양적인 화려한 색채와 매혹적인 곡, 도취적이며 광란적인 격렬한 리듬 은 보로딘의 모든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뛰어나다.
보로딘 은 이 외에 현악 4중주곡 2곡과 여러 개의 가곡, 미완성 교향곡 제3번 A 단조, 그리고 교향시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를 작곡하였다.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는 1880년에 당시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작곡한 악곡이다. 이 작품에서 보로딘 은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수법으로 선율을 구상 하고, 특이한 기교를 사용하여 동양적인 맛이 나도록 곡을 썼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노래와 동양적인 선율을 결합시킨 것으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곡이다.
보로딘의 음악 활동은 교수 활동과 학문 연구를 하는 데서 오는 긴장감을 풀어 주는 여가 활동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는 러시아의 유수한 실내악 작곡가이며 러시아 국민 음악의 창시자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뛰어난 첼로 연주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1880년대에 업무를 과중하게 떠맡고 건강이 나빠져서 작곡에 전념할 시간의 여유가 거의 없었으며, 1887년에 무도회에서 갑자기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