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염창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흙으로 쌓아 올린 성. 사적 제5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백제
성왕 때를 전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당시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을 보호하기 위해 쌓아 올린 외곽 방어 시설이다.
성벽은
부소산성의 동문 부근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있는 청산성을 거쳐 남쪽으로 석목리 필서봉 꼭대기를 지나 염창리 뒷산의 봉우리를 거쳐 금강변까지 흙으로 쌓아 올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흙으로 쌓아 올렸기 때문에 무너진 부분이 많아 형태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현재는 청산성 동쪽에 200m 정도와 석목리에서 동문 다리까지 그리고 필서봉에서 염창리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 곳에는 동쪽으로 논산으로 왕래하는 동문터와 공주로 통하는 북문터가 있다.
동문터 부근의 성의 외곽 단면을 조사한 결과 밑변이 13m, 윗변이 4m, 높이가 5.2m이며 황토질의 흙으로 쌓아 올린 것을 알 수 있다. 필서봉에는 횃불을 올리는 봉수터와 건물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성 외곽의 끝부분은 축석의 안쪽에 적심석을 넣고 만든 부분이 드러나 있다.
서쪽에 있는 성의 외곽은 부소 산성 서문터에서 현재의 유스 호스텔을 거쳐 관북리·구교리·유수지·동남리·군수리·성말리까지 쌓았다.
성문터로는 논산으로 통하는 동문터, 공주로 통하는 동북문터, 구아리로 통하는 서북문터, 장승백이 남쪽에서 규암리로 가는 서문터가 있다.
남쪽 나성은 동리 중리 당리를 연결한 것으로 토루와 문초석이 남아 있다.
이 성의 안에는 백제 시대의 왕궁을 비롯하여 관아· 민가·절· 상가와 수도 수비를 위한 방위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남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수로도 파 놓은 것으로 보아 이 성은 자연적인 이중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여 나성은 청산성·청마 산성과 함께 왕도를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외곽 방어 시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