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무덤들. 사적 제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부여에서 논산 쪽으로 3㎞ 정도 떨어진 산의 남쪽 기슭에 있다. 왕릉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들은 3기씩 앞뒤 2열을 이루고 1 기가 뒤에 떨어져 있어 모두 7 기로 구성되어 있다.
1915~1937년 구로이티, 세키노, 야쓰이 등 일본 학자가 여러 차례 조사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1호분에 있는 사신도 벽화로 더욱더 유명해졌다.
이 고분의 내부 구조는 널길이 있는 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돌 이하를 모두 지하에 지은 완전한 지하 석실분이다.
석실의 구조 형식은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석실의 수직벽 위에 판석을 바로 올려 놓은 평천장식 석실분으로 1 호분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2 호분과 같은 형식으로 장대석이 있는 터널식 천장 석실분인데, 평면은 1 호분 과 비슷하나 벽체와 천장 축조 방식은 약간 다르다. 재료로는 장대석을 사용하였고 천장을 송산리 6 호분이나 무령 왕릉같이 굴처럼 곡선을 이루게 하였다. 셋째는, 3 호분과 같은 형식인 천장이 평사식으로 된 판석조 석실분이다. 이 무덤들은 일찍이 도굴당하여 부장품은 거의 사라지고 몇 점의 파편만 출토되었다. 5 호분에서는 관대 위에서 두개골 파편, 칠을 한 목관 조각, 금동제 장신구 등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매장 방식은 1·2·3호는 어울무덤 즉 합장 형태이고, 5 호분은 홑무덤, 즉 단장으로 추정된다. 시신의 머리는 북쪽을 향하고, 관이 놓인 바닥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 깔아 놓았다.
고분이 만들어진 순서와 구조를 대략 살펴보면, 가장 먼저 만들어진 2 호분은 천장의 구조가 터널식으로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무령 왕릉과 기본 구조는 같고, 장대석을 한 점만이 다르다. 1 호분의 천장은 평천장이지만 널길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고 밖으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형태로, 이러한 형식은 고구려 석실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든 시기는 대략 6세기 중엽~7세기 중엽으로 보이는데, 편년이 가장 앞서는 2호분은 부여로 수도를 옮긴 성왕 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들은 고구려와 중국 남조 를 통해 받아들인 문화적 요소를 완전히 소화시킨 백제 후기 고분 미술의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