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린성의 옌지·허룽·왕칭 등 3현(縣)의 북간도 이주민 대표가 조직한 독립 운동 단체. 이 단체는 간도로 이주한 이주 동포 중 크리스트교 에 귀의한 교포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다.
1914년
이동휘 가 명동에 도착한 것을 계기로 구국 운동을 위해서 전진할 것을 맹세한 단체로 처음에는 연변 교민회를 조직,
김약연 ·
구춘선·
김영학·
마진·
강백규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3일 간도 용정에서 거행된 독립 선언서 발표식을 기회로 명동을 본거지로 하여
명동 중학교를 설립하여 현대식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교육은 용정에 있는
이상설이 설립한
서전 서숙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이 학교를 중심으로 독립 사상을 고취하였고 애국 정신을 함양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이 학교의 교장은 국민회 회장이 겸임하였다. 국민회의 당시 회장은 구춘선이었고 부회장은 강구우였다. 이 밖에 평의원에는 방우룡·유예균·조권식·장석함·김준근이 있었다.
또한 간도를 중구·남구·서구·왕청구·동구 등 5개 구로 나누어 목사와 장로로서 각 지방 집행 위원을 삼고, 그 산하에 52개의 지회가 있었다. 중구에는 강백규·강구우·이오현, 남구에는 김정규, 서구에는 한대진·양종식·백우학, 왕청구에는 김준근·서영복, 동구에는 양도헌·김사범·김윤승·김정삼 등이 목사와 장로로서 각 지방의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뒤 훈춘의
대한 국민회와 합류하였으며, 80여 개의 지회를 두고 활동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