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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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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 (-)
산을 지키며 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장한다고 여겨지는 신.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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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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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지키며 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장한다고 여겨지는 신. 모든 자연물에는 정령이 있다고 믿는 원시 신앙인 애니미즘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산신령 또는 신령 이라고도 한다. 이름난 산에는 영험한 신이 있다는 믿음은 고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산신에게 도와 줄 것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산신은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물이나 비를 내리는 강우신이나 풍산신의 성격을 띠고, 유목민에게는 사냥감을 풍부하게 내리는 시혜자이면서도 노여움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산신 이 숭배 대상으로 나타난 것은 고대의 건국 신화에서부터이다. 단군 신화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건국 신화는 산신과 연결되어 있다. 고조선의 경우, 천제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그 아들 단군으로 이어지고, 단군은 나라를 다스린 뒤 산신이 된다. 가야의 경우에도 하늘의 명을 예시받고 자주색 줄이 구지봉에 드리워져 수로왕이 탄생하고, 나라를 다스린 뒤 역시 신이 된다. 고구려의 경우에도 하늘에서 능심산에 내려온 해모수의 아들 주몽이 나라를 다스린 뒤 신이 되며, 신라 건국 초의 여섯 촌장도 하늘에서 표암봉·형산 등에 각각 내려온 뒤 역시 양산에 내려온 천신의 아들 혁거세를 맞는다. 즉 하늘의 신이 산에 내려오고, 다시 산신으로 연결되는 공통점으로 미루어 볼 때 고대인들의 신에 대한 전형적인 생각을 알 수 있다. 삼국 시대에 접어들면 이 같은 산신에 대한 믿음이 더욱 널리 확산된다. 고구려는 가뭄으로 산천에 제사하였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고, 《구당서》에 의하면 백제는 "먼저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 지내고 산곡신에 그 다음 제사 지냈다."고 하였으며, 《삼국유사》에는 " 신라 경덕왕 때 오악 삼산신에게 제사 지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삼산은 중국식으로 봉래산 ·방장산·영주산으로 하고, 오악은 동은 토함산, 남은 지리산, 서는 계룡산, 북은 태백산, 중앙은 부악산으로 정하였는데, 이들이 산신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그 밖에도 혁거세의 어머니신으로 알려진 선도산성모, 치술령의 산신 인 박제상의 부인, 토함산에 있는 탈해왕, 형산에 모신 경순왕, 지리산의 성모천왕 등을 영험한 산신으로 모셨다. 고려는 나라를 세우기 전부터 이미 부소산· 송악· 곡령 등이 풍수와 관련되어 왕조의 터를 이루었으며, 해마다 봄과 가을에 덕적산·백악· 송악· 목멱산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은혜를 빌었다. 또 여러 산에 산신당을 두었으며, 여기에 모신 산신에게 국가에서 작위를 주고 녹미를 지급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에도 산신에 대한 신앙은 계속되어 남의 지리산, 중앙의 삼각산, 서의 송악산, 북의 비백산을 사악신으로 정하였으며, 동의 치악산, 서의 오관산·우이산· 마니산, 남의 계룡산·죽령산·우불산· 주흘산·금성산· 한라산, 북의 감악산·의관령· 백두산, 중앙의 목멱산 등에 제사 지냈다. 이렇듯 국가가 제사를 받들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각지에 진산(鎭山)을 정하여 산신당을 짓고 제를 올렸다. 한편 산신은 대부분 백발 노인이나 호랑이 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백발 노인이 호랑이를 타고 나타나기도 하고 동자와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산신은 신선이나 선산 등 도교적 요소가 더해진 민간 신앙 의 한 단면임을 알 수 있다. 또 산신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남성신뿐 아니라 여성신의 경우도 많은데, 일반적으로 산모신으로 알려진 미륵할미나 산할미 등이 많다. 이 경우는 인간의 보호자로서의 자연, 인간을 감싸는 모성 본능을 지닌 자연 등이 신격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산모신은 물할미 및 지모신과 더불어 자연 모신 신앙의 세 개의 핵을 이룬다. 대체로 절에서도 산신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산신각과 함께 불교가 민간 신앙의 큰 줄기를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절에 있는 산신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절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한편 마을의 평안과 풍작, 기우 등을 기원하는 일은 고산과 명산뿐 아니라 마을 가까운 야산의 산신에게 제사하기도 하여서 경우에 따라서는 산신제와 동제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신의 계통이나 지위로 볼 때 산신은 동신과 분명히 구분되며, 산신이 지위도 높고 관할권도 더 광범한 것으로 믿고 있다. 또 산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은 인간의 생활과 관련지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체로 산신이 사는 곳은 산꼭대기·산중턱·산기슭 세 곳으로 나눌 수 있다. 산꼭대기는 하늘과 통하는 곳으로 세상을 관장할 수 있어, 신화와 관계되어 있거나 강력한 지배자로 여겨지는 산신이 여기에 거처한다. 따라서 이러한 산신을 모시는 산신당은 산꼭대기에 세운다. 산중턱형은 이보다 좀더 인간과 가까워진 산신이다. 산을 넘거나 나무를 베거나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곳이 주로 중턱이기 때문에 여기에 산신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이 곳에 산신당이나 신단을 세워 평안을 기원하였다. 산 아래 평야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지는 산신당은 인간 생활과 매우 가까운 경우로, 산신이 산뿐만 아니라 농경 생활과도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산기슭형의 산신은 농사 의 풍흉과 마을 안녕, 가족들의 건강과 아들 낳기를 비는 일 등 전반적인 생활을 기원하는 대상이 된다.
◈ 조회순
2024.08.31
33. 산신령이 돌봐준 효자
【문화】 어느 한 마을에 남편이 일찍 죽어 부인이 혼자서 외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아들이 외동아들이다 보니 효성 또한 지극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인이 병이 들었는데 아들이 매우 걱정을 하여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아도 별 효험이 없었다.
2024.09.21
【문화】 퇴계선생은 바둑도 국수급이래요. 바둑을 아주 잘 뜨는 분이라. 어느 날 금강산 유람을 들어갔는데, 한참을 가다가 보니 어느 젊은 사람이 마상(馬上)에 떡 앉아서 퇴계선생을 보고 말을 아주 반말 비슷하게 말을 걸드라 그해요. 저 당신 이황선생이지요. 아 그렇다.고 하니. 당신이 나이도 많고 유학자이지만 바둑도 잘 뚠다는데. 하고 반말 비슷하게 하이께네.
2024.10.23
【문화】 6.25때 피난을 가지 못한 젊은이가 왕방산에 숨게 되었다.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 젊은이는 주변의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고 목숨을 연장하면서 산신령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하기를 서너 달이 지났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2
【문화】 고려 시대에 포천땅에서 갑자기 미륵불이 솟았다. 그러나 그 미륵불은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어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날씨가 더우면 더운 대로 지냈다. 어느 날 평양에서 서울로 장사를 하러 오던 사람이, 이 미륵불에 기대어 노숙을 하게 되었다. 이 평양 상인은 미륵불이 너무나 안스러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비단천으로 미륵불상을 정성껏 감싸주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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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문화】 6.25때 피난을 가지 못한 젊은이가 왕방산에 숨게 되었다.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 젊은이는 주변의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고 목숨을 연장하면서 산신령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하기를 서너 달이 지났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2
【문화】 고려 시대에 포천땅에서 갑자기 미륵불이 솟았다. 그러나 그 미륵불은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어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날씨가 더우면 더운 대로 지냈다. 어느 날 평양에서 서울로 장사를 하러 오던 사람이, 이 미륵불에 기대어 노숙을 하게 되었다. 이 평양 상인은 미륵불이 너무나 안스러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비단천으로 미륵불상을 정성껏 감싸주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09.21
【문화】 퇴계선생은 바둑도 국수급이래요. 바둑을 아주 잘 뜨는 분이라. 어느 날 금강산 유람을 들어갔는데, 한참을 가다가 보니 어느 젊은 사람이 마상(馬上)에 떡 앉아서 퇴계선생을 보고 말을 아주 반말 비슷하게 말을 걸드라 그해요. 저 당신 이황선생이지요. 아 그렇다.고 하니. 당신이 나이도 많고 유학자이지만 바둑도 잘 뚠다는데. 하고 반말 비슷하게 하이께네.
2024.08.31
33. 산신령이 돌봐준 효자
【문화】 어느 한 마을에 남편이 일찍 죽어 부인이 혼자서 외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아들이 외동아들이다 보니 효성 또한 지극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인이 병이 들었는데 아들이 매우 걱정을 하여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아도 별 효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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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4) 백과 포천시 (2)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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