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시대의 최고 관직. 법흥왕(531년) 때 처음 실시하였다.
부족 연맹장의 성격을 가지고 왕의 전제력이 점차 강화되면서, 왕은 귀족 회의를 초월한 존재로 물러나 앉고 대신 상대등이 그 주재자이며, 부족의 대표자가 되었다.
상대등은 중대에 이르러 귀족 회의의 정치적 영향력이 감소함에 따라 정치적 실권을 집사부의 장인 시중에게 넘겨 주게 되어 권력이 무력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왕권이 다시 약화되자 상대등은 정치의 실권을 다시 장악하게 되고, 특히 800년대 전반기에는 상대등을 축으로 하여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