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경계인
수에즈 지협에 건설된 수평식 항행 운하로서,
지중해와
홍해와
인도양을 이어 놓았다.
유럽권과 아시아권을 잇는 최단 거리의 중요 수로로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계 최대의 해양 운하이다.
지중해 연안의
포트사이드 항과 수에즈만 북단의
수에즈시를 연결하였다. 규모는 길이 162.5km, 수면의 너비 160~200m, 깊이 19.5m이다. 선박이 이 운하 를 통과하는 데는 약 15시간이 걸린다.
역사
지중해와 홍해를 이으려는 노력은 기원전부터 있어 왔다.
16세기 이후 서양 세력이 아시아의 자원에 눈독을 들이게 되면서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 등은 아프리카 남쪽 끝을 돌아가는 항로로 무역과 식민지 다툼을 벌였다.
이에 대항하려고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수에즈 지협에 운하를 계획하였으나, 토목 기술 부족과 이집트 태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뒤 프랑스의
레셉스가 수에즈 운하 회사를 세워 10년간의 공사 끝에
1869년에 완성하였으며,
1964년의 확장 공사로 지금의 규모로 커졌다.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 태수와의 합작으로 처음에는 프랑스가 경영하였으나, 뒤에 영국이 사들였으며,
1956년에는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국유화하였다.
경제적 중요성
운하가 생기기 전에는 유럽의 무역선과 군함들은 아프리카 남쪽의 아굴라스곶을 돌아 인도와 동남 아시아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거리는 매우 단축되어 영국 런던과 인도 봄베이 사이가 2만 1,400km에서 1만 472km로 줄었다.
이처럼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로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이 운하를 손에 넣은 영국은 아시아 식민지 쟁탈전에서 유럽 여러 나라를 제치고 세계 경제권을 몰아 쥘 수 있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중동 지역에서 석유가 대량으로 개발되고, 동서 간의 무역량이 크게 늘면서 이 운하의 중요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1956년에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국유화를 선언하자, 뒤이어 운하를 되차지하려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수에즈 전쟁이 벌어졌고, 1967년의 제3차 중동 전쟁 후에는 8년 동안이나 운하가 폐쇄되었다가 1975년 6월 개통하였다.
현재 운하의 수입은 이집트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