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에 우창에서 봉기하여 청 왕조를 무너뜨린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 이 혁명이 일어나자 순식간에 중국 전국에 파급되었다.
1912년 1월 1일
쑨원[孫文]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고 난징[南京]정부가 수립되어 쑨원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그 지도이념으로 한 중화민국이 발족하였다.
그러나 3월에 혁명 세력이 약화되었고 청 왕조의 군벌인
위안 스카이[袁世凱]가 청나라의 황제를 퇴위시키는 조건으로 대총통 자리를 빼앗고 베이징[北京] 정부를 조직하였다.
이 때부터 혁명은 급속하게 반혁명으로 전화되었다. 정당이 난립하는 중에 혁명파는 혁명동맹회를 개조하고 소당파를 합쳐서
국민당(國民黨)을 창립, 의회정치의 실현을 원하였으나, 열강과 입헌파의 지지를 받은 위안스카이는 혁명파에게 무력탄압을 가하여 제2혁명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혁명파는 1913년 7월과 1915년 12월에도 혁명을 일으켜 위안스카이 정권과 대결하였으나, 반제(反帝)·반봉건의 과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신해 혁명은 오랜 군주제를 끝맺게 하고, 이민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공화제를 이룩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