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 걸쳐 프랑스에서 전개된 문학 경향의 하나로, 실존주의 사상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실존주의는 모든 관념적인 것을 부정하고 육체만이 오직 하나의 확실한 존재라고 보고, 거기에서 자기의 세계를 찾으려는 사고 방식이다.
19세기에
니체와
키에르케고르에게서 나타나서,
하이데거 및
야스퍼스 에 이르러 철학의 한 유파로 확립되었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등이며, 이들이
실존주의 문학을 주도하였다.
이들 이전에도 실존 의식 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은
보들레르나
모파상·
도스토예프스키 ·
카프카 등의 작품에서 이미 싹이 텄으나, 실존의 문제 를 인간의 새로운 생활 방식의 하나로 제기한 것은 이들 사르트르 등의 대표자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자기의 본질을 완성시키기 위해 인생을 선택하고, 책임있는 행동으로 사회에 참여하면서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인간을 묘사하려고 하였다. 이런 문학적 경향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20여 년 간에 걸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18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과 1929년에 밀어 닥친 세계 의 경제적 위기, 1933년 이후 나치즘의 지배, 1936년에 발생한 에스파냐 내란, 1940년대 초의 제2차 세계 대전, 그 후에 나타난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 및 약소 국가들의 대두 등 연이어 발생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인간의 개성과 본질, 그리고 자유가 역사나 사회 의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를 깨닫게 하였고, 자유 의 승리를 믿어 온 기존의 가치 체계에 커다란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1940년을 전후로 활동하고 있던 프랑스의 많은 작가들은 사회와 생존의 현실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새로운 바탕 위에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공통된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들은 신이 본질을 만든다고 하는 종래의 사고 방식을 거부하고, 본질에 앞서서 인간 의 존재를 중심으로 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내세워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들의 작품 경향을 넓은 의미에서 실존주의 문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 실존주의 문학을 언급할 때는 다른 누구보다도 사르트르 를 중심으로 한 문학적 표현을 가리킨다.
사르트르는 직접 처참한 전쟁을 체험한 후에, 진정한 자유를 얻고 진정한 존재를 완성하는 길은 역사나 사회 그리고 현실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실존 철학을 바탕으로 창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37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 《벽》에서, 단지 존재할 뿐이지 인생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였고, 1938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구토》에서는 실존 의식을 자각한 인간 의 삶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특히, 1943년에 출간된 작품 《존재와 무》에서는 우연히 존재하게 되는 인간의 모습,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고난 인간의 괴로운 자유, 다른 사람과 나의 존재론적인 관계, 일정한 상황 속에서 선택 을 통해 이루어 나가야 할 인간의 운명 등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을 해 놓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이러한 철학적인 반성과 고찰은
하이데거와
후설의 깊은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것으로서, 인간의 실존적 모습에 대하여 뜻 깊은 의의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사상은 1943년에 출간된 희곡 《파리 떼》, 1947년에 발표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거쳐서 1951년의 《악마와 신》, 1960년에 발표된 《알토나의 유폐자》에 이르는 수많은 소설과 희곡 및 평론을 통해서 더욱더 부각되었다.
사르트르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헝가리 사건이나 알제리 문제 등의 정치 ·사회·시사 문제 등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참여로 인하여 사르트르의 문학 및 실존주의 문학 은 새로운 의미에서의 휴머니즘 문학이라고도 일컬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실존 철학을 밑에 깔고 있는 사르트르의 문학이 그 시대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대상이 되자 보부아르 와 카뮈도 역시 그와 동류의 작가로 취급되게 되었다.
이 중에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흡사한 사상을 작품에 담으면서도 사르트르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섬세한 감성과 여성의 존재성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학생 시절에 사르트르를 만난 보부아르는, 무조건 순응하는 것을 반대하고 부르주아에 반항한다는 측면에서 사르트르와 의견이 일치되었으며, 이후 그와 확고하게 결합하게 되었다. 1943년에 발표된 장편 소설 《초대받은 여자》에서 보부와르는 타인의 존재는 늘 자아를 파괴한다는 인식을 묘사하였다. 1944년의 작품 《타인의 피》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평론으로서 실존주의 사상을 해설한 1944년의 작품 《피리유스와 시네마스》, 1945년에 발표된 희곡 《쓸데없는 입》 등에서도 작가의 실존 사상은 뚜렷이 드러났다. 특히, 1949년에 발표된 가장 큰 대작인 《제2의 성》에서는 역사적·철학적·사회적·성적인 온갖 각도에서 여자의 살아가는 모양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새로운 여성론을 제시하여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보부아르의 근본적인 인생관인 실존 철학이 처음부터 끝까지 밑받침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요약해 놓고 있다.
한편, 카뮈는 1942년에 발표한 소설 《이방인》과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인간의 부조리 의식을 부각시켰다. 처음에는 카뮈가 사르트르와 동질적인 작가로 생각되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이 두 작가의 사상적인 면이나 감성적인 면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카뮈는, 인간에게 허위와 속임수를 강요하며 인간 의 진정한 존재를 부정하는 부조리와의 싸움이야말로 인간 의 의무라고 주장하였다. 《시시포스의 신화》에서는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 떨어지고, 또 밀고 올라가면 다시 밑으로 떨어지는 절망적인 인간의 행위 속에서 일종의 반항 의식을 표현하였으며, 이러한 반항을 부조리에 대항하는 인간의 참여 행위로 보았다. 1947년에 발표된 장편 소설 《페스트》에서도 부조리에 반항하여 인간성을 추구하는 주인공을 그렸고, 1951년에 발표된 《반항적 인간》도 이러한 반항적 행동을 통해 부조리적인 인간의 성실한 인간성 탐구의 길을 보여 주면서, 결과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게 되는 면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카뮈의 문학을 비롯하여 사르트르 및 보부와르 등의 문학은, 문학사적인 견지에서 볼 때, 제 나름대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와 새로운 윤리 의 모색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데 묶어 실존주의 문학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작가가 아닌 C.H. 윌슨이나 G. 그린 등의 작품도 이 실존주의 문학의 범주에 포함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1950년을 전후하여 이들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들어와 번역·출간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실존주의 문학은 인간 조건의 추구라는 점에서 우리 나라의 문단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또한, 사르트르의 사회 참여 이론은 1950년대 말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우리 나라 참여 문학의 이론적인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