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가사나 시조 등 국문학상의 모든 작품. 국문학에 등장하는 어부가로는 시조가 120수, 가사가 30여 작품이 있다.
고기를 잡는 어부의 생활이 시조나 가사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 것은 중국 문학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는 어부의 원래 한자 표기가 '漁夫'인 데, 반해 국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는 거의 '漁父'로 표기되어 있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중국의 유명한 문학가였던
굴원은 『어부사』를 지어서 어부의 신선 같은 생활을 노래하였다. 이 『어부사』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문인뿐만 아니라 조선의 문인들도 즐겨 읽었고, 또 자주 인용되기도 하였다. 굴원이 『어부사』에서 어부를 '漁父'로 표기하였기 때문에 이후부터 문인들이 어부사를 지을 때 '漁父'라고 즐겨 표기하였다. 굴원은 많은 훌륭한 작품을 남긴 중국이 자랑하는 뛰어난 문학자였기 때문에 그의 시와 시풍은 한자 문화권의 문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굴원 이외에도 중국의 많은 뛰어난 문학가들이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작품을 즐겨썼다. 유종원의 《강설》, 이어(李漁)의 《어인환주도》, 두목의 《여숙》, 사공서의 《강촌즉사》, 도연명 의 《도화원기》 등이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오는 어부의 생활이 모두 어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보다는 신선과 같은 고답적인 생활 태도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굴원의 《어부사》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는 어부가 현실 세계를 비관하고, 새로운 이상향을 열려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자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어부의 묘사에 영향을 받아 국문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어부의 생활을 그렸다. 국문학에서는 특히 벼슬을 버리고 자연에 은둔해서 사는 선비의 고답적 생활을 어부의 생활로 묘사하였다. 국문학에 나오는 어부사 150수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 악장가사'에 나오는 작자 미상의 《어부사》이고, 두 번째는 조선 명종 때의 문학가인 이현보가 지은 《어부사》이다. 세 번째는 조선 효종 때의 문학가인 윤선도가 지은 《어부사시사》이다.
이 중 첫 번째 작자 미상의 《어부사》는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작품성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후세 문학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이 《어부사》는 작자와 지어진 연대가 모두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략 고려 충목왕 이전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 악장가사'의 《가사 상(上)편》에는 가사 24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 《어부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은 모두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수가 6절이며 절은 4구·3구·2구로 이루어져 있다. 제3절과 제5절에는 일종의 후렴구인 '이어라 이어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 와', '닫드러라 닫드러라' 등의 흥을 돋구는 조흥구가 들어 있다. 이 후렴구가 매우 독특하기 때문에 작품성을 더욱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고려의 문인들도 즐겨 읊었으며, 조선 시대 문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려 시대 작자 미상의 《어부사》는 조선 명종 때에 이르러 문학가 농암 이현보(1467~1555)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작품을 장가 9수와 단가 5수로 개작하였다. 이것이 이현보의 《어부사》이다.
이 작품은 조선 시대 12 가사 중의 하나에 속한다. 장가 9수는 여음을 붙여서 한 장씩 잇대어 나간 분장체의 노래로써 장단은 도드리 장단이며, 가락은 계면조 를 띠고 있다. 각 장의 사설 중간에 '배 띄워라', '닻 들어라', '배 저어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등의 여음을 붙여서 시의 운치를 돋우고 있다. 음악상으로 1·3·5·7절과 2·4·6·8절이 각각 짝을 이룬다. 단가 5수는 연시조이다.
이현보의 《어부사》는 어부의 생활을 매우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에, 뛰어난 국문학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황은 《청구영언》의 발문에서 이현보의 《어부사》를 언급하며,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여 '비록 이 작품이 고려 시대의 작품을 개사한 것이라 하더라도 거의 이현보의 창작품이나 다름없다'는 표현을 하였다. 이현보의 작품집인 '농암집'에 실려 전한다.
이어서 조선 효종 때의 문인 윤선도는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이 작품은 어부의 생활을 주제로 한 국문학 작품 중에서 최고의 위치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부사시사》는 ' 해동가요'에 실려서 전하는데, '어부단가 52장'이라고 하여 52수의 연시조로 되어 있다. 《어부사시사》는 윤선도가 65세 되던 해인 1651년(효종 2)에 지은 노래이다. 윤선도는 당시 붕당 정치에서 밀려나 보길도로 유배를 가 있었는데, 이 곳에서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이 작품을 지은 것이다. 외로운 섬에 유배되어 살면서 고기를 낚는 자신의 모습을 어부로 묘사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나오는 어부는 윤선도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부사시사》는 어부의 생활을 봄· 여름· 가을· 겨울 로 나누어서 각 계절별로 묘사하였는데, 작품마다 여음 을 삽입하였다. 여음은 어부가 어선을 출범하였다가 귀선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고 논리 정연하게 묘사하고 있다. 먼저 배를 띄우고 닻을 들고 돛을 달아 놓고 노를 저으며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다가, 돛을 내리고 배를 세우고 배를 매어 놓고, 닻을 내리고 매를 뭍으로 올려 놓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이현보의 《어부사》에서 시상을 얻은 것이다. 따라서 고려 시대부터 전해 오는 《어부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속세를 벗어나서 자연 에 은둔해서 사는 어부의 신선과 같은 생활을 아름다운 시어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어부 역시 고기잡이를 생존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즐기는 선비의 태도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의 모든 국문학 작품을 통틀어서 매우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윤선도의 작품 가운데서 《오우가》와 더불어 제일 수작으로 꼽힌다. 《어부사시사》는 윤선도의 작품집 '고산유고'에도 실려 있다.
이러한 작품 이외에도 많은 문학가들이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어부가를 지었으며, 궁중에서 사는 기생들도 어부가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선구적 실학자 이수광은 자신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장가 중에서 가장 오래 된 작품으로, 《감군은》 《한림별곡》 등과 함께 《어부사》를 꼽은 것으로 보아서,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어부가를 즐겨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