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우호 및 협력 관계에 있으면서 영국을 연방의 상징적 의미의 국가 원수로 인정했던 영국령에 속해 있던 식민지 국가들로 이루어진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 체제의 연합체. 원래의 명칭은 영국 국가 연방으로, 흔히 영연방이라고 한다.
1931년에서1946년까지 존속되었다.
영연방에 속해 있는 이들 국가들은 모두가 영국과 어깨 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던 주권 국가이며, 이 집합체를 영국 연방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 연방은 대영 제국으로부터 발전하게 되었으며, 영국 은 이들 식민지 국가들에게 최대한 자치권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19세기에 이르러 수많은 피보호국을 가질 수 있었다. 이들 대부분의 식민지 국가들은 의회 정치를 행하였던 유럽인들이 대부분을 이루었고, 이에 따른 상당 부분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따라 이들 국가들은 대영 제국 안에서의 지위가 부여되었으며, 이를 일컬어 영국 국가 연방이라고 칭하였다. 그렇지만 1946년에 이르러 영국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은 없어졌으며, 1920년부터 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면서 1947년 인도의 독립을 시작으로 하여 많은 보호령에 대해 독립을 인정하였으며, 이러한 결과로서 영국 연방의 정의를 재정립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1948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실론 등이 영국 연방에 들어왔고, 같은 해에는 미얀마가 독립되었지만, 영국 연방에 들어가는 것은 거절하였다. 이들 가입국들은 공화제나 의회제의 형태를 벗어나 독자적인 형태를 선택할 수 있었으며, 연방에서 나오는 것도 자유였다.
또한, 이들 국가들과의 이해 대립에 의하여 영국 연방에서 탈퇴한 국가들이 생겨났는데, 1948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1961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1972년에는 파키스탄이 영국 연방으로부터 탈퇴를 선언하였다. 파키스탄 의 경우에는 1988년 11월 총선거에 의해 부토 총리가 집권하면서 친서방 정책을 내세우게 되어 1989년 10월 17년 만에 다시 영연방에 가입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 식민지 국가들은 영국령이었으므로 언어는 영어를 공통어로 사용하였으며, 의회 제도 및 영국식 사회 제도와 관습을 따랐다는 것에 일치감이 있었다.
영국 연방의 성립과 발전의 배경을 보면, 이들 구성국들 중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은 자치령이라고 불렀다. 자치령들은 본래 식민지 형태를 띠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기 이전에 내정 문제 에 대하여 자치권을 얻었으며, 전쟁이 끝나면서 독립 성향을 띠게 되었다.
1926년
밸푸어 선언에 의하여 자치령에 대하여는 독립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영국 본토와 더불어 동등한 입장에서 영연방의 일원으로 결속하게 되었다.
1931년 밸푸어 선언을 명문화한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의하여 자치령을 독립적 지위로 승격시켰다. 이 때 제1차 영연방이 만들어졌고 거기에는 영국 국왕을 공통의 원수로서 삼는 혈족 연대 의식이 생겨났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카브리해 등이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면서 제1차 영연방은 와해되기 시작하여 또다시 다른 문화와 다민족 국가 그룹으로 형성된 제2차 영연방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1949년 영연방 정상 회의에 의하여 '영국 국왕은 상징적인 영연방의 수장'이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
영연방 정상 회의의 내용을 보면,
첫째, 영국 국왕은 영연방에 속해 있는 각국을 묶어 주는 상징의 의미이다.
둘째, 영국 국왕은 영연방 구성국의 수장으로서의 지위가 주어졌다.
셋째, 이들 구성국 간의 공통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하여는 영연방 정상 회의를 연다.
넷째, 일반적으로 외교 사절이 아닌 고등 판무관을 참석케 한다.
다섯째, 조약은 사전에 알려서 맺도록 하였으며, 영연방에 속해 있는 구성국 사이에서는 서로의 분쟁에 대하여 국제 재판 기관에 회부하지 않으며, 범인 인도도 각기 다르게 한다.
여섯째, 연방 구성국의 국민은 연방 시민의 자격을 가진다.
이들 영국 연방을 묶어 주는 요인에는 오랜 자치령 을 통한 국민의 감정이 제일 컸으며, 교역이나 투자 또는 같은 화폐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는 나라들도 있었으며, 인구 이동· 교육 제도· 직업이나 사법 제도 및 스포츠 행사 등에 의하여 연대감을 가지는 나라들도 있었다.
1950년에서 1970년에 걸쳐 독립이 인정된 많은 영국의 피보호국들이 자연스럽게 영국 연방에 가입을 원하였다. 따라서 1965년에는 영국 연방 대표들의 정기 회담이나 영국 연방 활동 등의 계획을 세우기 위한 영국 연방 사무국을 런던에 설치했다.
1973년 영국이 EC, 즉 유럽공동체에 가입하면서 연방의 경제적 유대 관계를 맺어주는 '영국 연방 특허 관세'가 없어졌으며, 파운드 지역 또한 유명 무실해졌으므로 연방에는 커다란 타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