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발생한 철학. 영국 철학 본래의 일반화된 성격은 추상적인 사변성에 대해서의 구상적인 실증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추구하는 바도 순수한 이론 에 치우치기 보다는 실천적인 사고를 밑바탕에 두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인 차원이 아닌 인식론적인 문제 의식을 만들어 내고, 또한 인식론 가운데서도 합리론보다는 경험론적 성향을 띠고 있다. 도덕이나 법률· 정치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실천 철학에서는 목적론적이며, 공리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중세의 영국 철학은 5세기의
펠라기우스의 철학적 활동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근대 국가의 탄생 전으로 가면 영국 철학 또한 학문의 공통어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범유럽적인 스콜라 신학의 범주에서 말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 이와 같은 것은 8세기의 요크 의 알쿠인과 9세기의 J.S. 에리우게나를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그렇지만 13세기에서 14세기의 중세에
R. 베이컨 과
W. 오컴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영국 철학의 특성을 이미 표현하였다. 후자의 유물론이나 사유경제설의 날카롭고 정확한 사상은
스콜라 철학을 내부적으로 무너뜨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근세의 영국 철학은 근대 국가에 접어들면서 영국 철학 또한 범유럽적인 성향으로부터 모국어 중심의 독자적인 성격을 강하게 나타냈다. 15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서
T. 모어나
R. 후커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사상가와 법사상가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갔다.
그렇지만 영국 고대 철학을 태어나게 한 것은
F. 베이컨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지식을 통한 실험이나 관찰의 중요성에 대하여 《학문의 진보》와 《신기관》을 통하여 역설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 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전적이며 연역적 논리에 대하여 귀납법을 부르짖었다.
그는 또한 정치적인 활동에 의하여 영국 근대 국가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튜더 왕조 마지막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를 상징하였다. 그에 의하여 나타난 영국 철학은
T. 홉스의 기계관적 자연관에 근거를 둔
합리주의를 통하여 유물론의 형이상학이 이루어졌다.
또한
홉스 의 《
리바이어던》의 윤리나 법철학은 개인주의· 쾌락주의 · 사회 계약설을 받아들이면서도 극단적인 전제 정치를 따르는 색다른 이론이었지만, 이와 같은 이론은 청교도 혁명이나 크롬웰의 공화제를 거치면서 왕정 복고로 다시 확립된
스튜어트 왕조의 체제를 대변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적 경향인 고전 중시 라고 하는 것은 영국에서는 독자적인 플라톤 사상의 부흥과 함께 연구를 탄생시켰다. 이와 같은 결과는
H. 모어나
커드워스 등 케임브리지 플라톤 학파의 형이상학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8세기에는 프랑스나 독일 등에 영향을 미치고
J. 로크 ·
G. 버클리 ·
D. 흄의 이른바 경험론의 트리오에 의해 영국 사상의 전통을 세우고 독창적인 철학으로 자리잡았다.
R. 데카르트로부터 영향을 받은
로크의 《
인간오성론》은
뉴턴의 물리학에 밑바탕을 두고 인식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는 경험 철학을 이룩하였으며, 또한 인지의 한계와 가능성 에 대하여 표현하는 인식론이나 비판 철학의 나아갈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홉스와는 상대적인
로크의 법 철학이나 정치 사상은 근대 시민 사회에 있어서의 민주주의, 이를테면 시민의 자유와 인권, 종교적인 관용 에 대하여 강하게 표현하였으며, 이와 같은 것은 홉스 이후의 영국 정치사에서
명예 혁명에 밑바탕을 두면서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철학이 종교에 있어서는 17세기 전반 J.F. 헤르바르트에 의해서 주장된 경향을 불러일으켰으며, J. 톨런드로 하여금 이신론이 나오게 하였다.
로크에 의하여 주장된 인식 비판 가운데 언어론이나 실체 비판은 버클리의 추상 관념과 물체적 실체의 비판으로 이어졌다. 결과론적으로 로크는 신· 정신· 물체의 3가지 실체에 대한 존재를 받아들이고, 버클리는 물체적 실체를 부정하면서도 정신의 실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만유 내재신론의 형이상학을 이루었는데 이와 같은 현상론이나 내재주의를 끊임없이 이끌어 낸 사람이 흄이었다. 그는 인간과 그 인식에 대한 연구에 뉴턴의 실험적 방법에 밑바탕을 두었으며, 그 내면 밑바닥에 존재하는 자연주의적 경향을 받아들이면서도 실체 개념과 인과율 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부정함으로써 경험 과학을 마지막 한계까지 끌고 나갔다. 이와 함께 그는 이와 같은 것을 정념과 도덕의 연구에 활용하여 종교적인 배경으로부터 벗어난 근대 인간학을 만들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같은 시대 또는 이후 시대의 컴버란트· 클라크·샤프츠버리·허치슨·A. 스미스 등과 같은 도덕 감성파가 내세운 사상은 홉스의 냉철하고도 엄격한 이기주의적인 인간관을 부정하고 흄의 근대 인간학을 내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흄의 내재주의는 이성· 학문· 신학 이론의 확실성에 대한 실체까지도 어긋나게 하는 회의주의적 귀결에서도 표현되었다. T. 리드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상식학파는 흄에 의존하는 성향을 가지면서도 그의 심리주의적 전제를 무시하고 상식을 통하여 실재를 파악하고 지식이나 신앙을 따르는 성향이 있었다.
19세기에는 경험론의 전통은
산업 혁명이 이룩된 시기와 의회 정치 를 통한 대영 제국이 기반을 갖춘 시대에
J. 벤담과 J. 밀 부자를 통하여 이어져 내려왔다.
베이컨의 귀납법을 더욱 확대시켜 나간
J.S. 밀의 《논리학》은 경험론의 전통을 정리하고 더욱 넓혀 나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추진한 것의 커다란 의의로는 흄의 도덕 사상의 한 부분을 추진하여 이기주의를 뛰어넘은
쾌락주의 이론이나 사회 성원에 대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
공리주의 를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낸 점도 있다.
그들의 활동은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지만 이후 20세기에 걸쳐서 영국 철학에는 서로 상반되는 두 종류가 나타났다. 이를테면, 한편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스펜서 가 주축이 되는 진화론에 대한 철학이나 빠른 속도로 퍼진 자연 과학의 발달에 의해 요청된 자연주의의 경향, 다른 한편에서는 옥스퍼드를 주축으로 한
독일 관념론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스털링·
그린·
케어드·그리고
보즌킷·
브래들리 등이 주축이 된 영국
헤겔학파의 관념론이나 이상주의이다.
현대에 있어서의 영국 철학은 1930년대에 두 파의 경향이나 특히 영국을 대표하는 전통파와 조금 동떨어진
헤겔학파의 관념론은
B. 러셀·
G.E. 무어·
L. 비트겐슈타인·
브로드 등과 같이 새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케임브리지 분석학파로부터의 비판에 의해 사라져 갔다.
19세기 전반의
W. 해밀턴·
R. 로이드 모건, 특히
G. 볼의 영향을 받아 뚜렷하게 발달 하기 시작한 논리학은 독일의
G. 프레게의 영향에 의하여,
B.A.W. 러셀·
A.N. 화이트헤드의 《
수학 원리》로부터 완성되었다.
러셀· 비트겐슈타인 등과 같은 사람들의 철학은 이러한 현대 논리에 영향을 받아 영국 관념론에 대한 실재론의 경향이나 경험론의 전통과 새로 나온 논리가 합쳐져서 나타나는 논리적 원자론으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동향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빈으로부터 생겨난 논리 실증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실증주의적이며 반형이상학적인 철학으로 나타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그들에게 존속되고 있는 형이상학적 생태와 논리 실증주의 운동이 끝나고 이론적으로 결합한 것이나 비트겐슈타인의 사상 변화로부터 생겨난 후기의 이론과 무어로부터의 영향에 따라 일상 언어 분석학파가 현대 영국 철학을 이끌어 나가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형식 논리 따위의 인공 언어와 별도로 일상 언어를 매개체로서의 수단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용법의 현상학적 분석으로부터 철학적인 개념과 문제의 비판적인 해명을 철학의 기본적인 사상으로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준비를 거쳐 전쟁 후에 표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철학적 문제의 논술 구현 방법과 표현 등에 있어서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또한 고전 연구의 전통 과도 일맥 상통하여 그 주축도
케임브리지로부터
옥스퍼드 로 옮겨 갔다.
G. 라일·
스트로슨·
J. 오스틴 등이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서유럽 비판 철학 의 하나로서 나타난 영국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미국
프래그머티즘과의 사이에서 활기찬 논쟁과 함께 서로 영향을 주면서 융합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