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시대, 나라에서 오경에 능통한 학자에게 주던 박사의 칭호. 이들은 유교의 5가지 경서 인 《주역》 《시경》 《서경》 《예기》 《춘추》 등의 경서 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에게 나라에서 박사로 지정하여 연구에 몰두하도록 직책을 준 것이다.
《주역》은 음과 양의 원리로 천지의 만물이 변화하는 현상을 설명하고 해석한 것으로, 주나라 때 완성되어 주역이라고 한다. 《시경》은 춘추 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서, 민요인 풍과 조정의 음악인 아, 종묘의 제사 음악인 송으로 이루어졌다. 《서경》은 중국의 요순 시대부터 주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에 대한 문헌을 수집하여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하는 경전으로, 예전에는 《상서》라고 불리었다. 《예기》는 주나라 말부터 진한 시대 유도를 닦는 선비가 지켜오던 예에 대한 설을 수록한 책으로, 주례· 의례와 함께 3례에 속한다. 《춘추》는 중국 노나라 은공 1년인 기원전 722년부터 애공 14년인 기원전 481년까지의 12대 242년간의 역사를 노나라의 사관이 기록한 것을, 공자가 윤리적인 입장에서 비판과 수정을 가하여 판단을 내린 것이다. 춘추에는 좌씨·곡량· 공양의 3 전이 있는데, 특히 3 전이 유명하다.
우리 나라의 백제에서와 같이, 중국에서도 한나라 때 태학의 교관으로서 박사관을 두어, 5경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전공 분야가 있으면서, 나라에서 인정하는 학파의 학자로서 50세 이상의 경륜이 있는 사람이었다.
백제 시대의 오경 박사는 역박사·의박사 등과 함께 일본에 초빙되어 고대 일본의 문명을 개화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무녕왕 때의
고안무·
단양이,
성왕 때의
왕유귀 등이 있다. 고안무는 본래 한나라 사람으로, 백제에 들어와 오경 박사가 되었으며, 무녕왕 16년인 516년에 일본에 가 있던 단양이와 교대하여 한학을 전하였다.
단양이는 무령왕 13년인 513년에 일본의 초빙을 받아 유학을 가르쳤다. 단양이의 도일 이후에 많은 학자들이 일본으로 초빙되어, 고대 일본의 문화 발달에 기여하였다. 이들 학자들이 도일하여 유교 교육을 담당한 사실은 《
일본서기》에 언급되어 있으며, 이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다른 부분의 박사들도 교류 하게 되었다.
백제는 일찍이 오경 박사 제도를 두어 유학 의 발달을 촉진하였으며, 이들 오경 박사는 당시 교육 기관 인 국학에서 유교의 교육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