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후기에 실록을 보관하던 5대 사고 중의 하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 에서 북쪽으로 4㎞ 떨어진 남호암의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역사에 대한 기록이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정부에서 사고를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 철종 때까지의 25대 472년간에 걸친 역사적인 사실을 연대순으로 적은 것으로 태백산본 1,181책, 정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잔여분 21책으로 총 2,077책이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실록을 올바르게 보존하기 위하여 세종 21년인 1439년에는 춘추관 이외에 충주·성주· 전주의 사고에 왕조실록 1부씩을 보관하였다. 그러나 선조 25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에 있던 사고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고가 모두 불에 타게 되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다시 태백산 사고·마리산 사고· 묘향산 사고· 춘추관 사고· 오대산 사고를 짓게 된다. 그리하여 선조 39년인 1606년에 전주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을 기초로 하여 4부를 다시 인쇄하여 각각 태백산·마리산· 묘향산· 춘추관 사고에 보관하였다. 교정을 본 교정 인쇄본은 오대산 사고에 보관하였으므로, 이것을 오대산본이라고 한다. 처음에 보대한 실록은 조선조의 태조 때부터 명종 때까지의 초고본이었다. 이후에도 광해군 8년인 1616년에 《선조실록》을 보대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효종 4년인 1653년에는 《인조실록》을, 그리고 순조 5년인 1805년 《정조실록》까지를 보관하였다.
실록은 임금이 왕의 자리에 재위하여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나 사건의 전말을 연대순으로 적어 놓는 것이다. 실록을 기록하는 것은, 후세에 그 당시의 일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임금의 자리에 있다 하여서, 실록을 거짓으로 적거나 진실을 숨기라는 명령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실록의 가치는 여타의 다른 유물들보다 높다. 사고는, 이처럼 중요한 가치를 가진 실록이 분실되거나 훼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별도의 장소를 정하여 보대한 것인 만큼, 사고를 지키는 관리도 필요하였다.
사고의 관리는 관리직과 수호직으로 나눈다. 관리직으로는 참봉이라는 직책이, 수호직으로는 실록수호총섭이라는 직책이 내려진다. 오대산 사고의 경우는 월정사를 책임지고 맡아 보는 우두머리 스님인 주지가 실록수호총섭도 맡아 사고의 수호에 힘썼다. 주지 외에도 수호 군인과, 스님이면서 군무를 맡아 보던 군승 약 80여 명이 실록의 보존을 위해서 오대산 사고를 지키고 있었다.
오대산 사고는 우리 나라가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게 되자, 이왕직 도서관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그 후 1911년에는 조선 총독부라는 일본의 통치 기관에게 강제적으로 모든 권한을 빼앗겼으며, 1913년에는 여기에 있던 모든 실록들이 동경 제국 대학의 부속 도서관에 기증의 형태로 접수된다.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자, 대출되어 있던 실록 45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불에 탔다. 불에 탄 실록 중에서 크게 훼손이 되지 않은 27권의 실록은 1932년 5월에 경성 제국 대학에서 서울 대학교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서울 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하여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