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황단(皇壇) 또는 원구단(圜丘壇, 圓丘壇), 원단(圜壇, 圓壇)이라고도 한다. 이 자리에는 조선 후기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남별궁이 있었는데, 고종(高宗 : 1852 ~1919)이
1897년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국의 예법에 맞추어 환구단을 건설하였다. 1897년(광무 원년) 10월에 완공된 환구단은 당시 왕실 최고의 도편수였던 심의석(沈宜碩 : 1854 ~ 1924)이 설계를 하였다. 환구단은 제사를 지내는 3층의 원형 제단과 하늘신의 위패를 모시는 3층 팔각 건물 황궁우(皇穹), 돌로 만든 북[石鼓]과 문 등으로 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조선총독부가 황궁우, 돌로 만든 북, 삼문, 협문 등을 제외한 환구단을 철거학,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지었다.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상징적 시설로서 당시 고종 황제가 머물던 황궁(현재의 덕수궁)과 마주보는 자리에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제천행사는 농경문화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부터는 국가적인 제천의례로 시행된 것으로 믿어진다.
고려 성종 2년(983) 정월에 처음 시행되어 설치와 폐지를 계속 되풀이하다가 조선초에 제천의례가 억제되자 폐지되었다. 세조 2년(1456)에는 일시적으로 제도화하여 1457년에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세조 10년(1464)에 실시된 제사를 마지막으로 환구단에서의 제사는 중단되었다. 환구단이 다시 설치된 것은 고종 34년(1897)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부터이다.
현재 환구단의 터에는 황궁우와 석고 3개가 남아있다. 황궁우는 1899년에 만들어진 3층의 8각 건물이며, 석고는 악기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으로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1913년 일제에 의해 환구단은 헐리고 그 터에는 지금의 조선호텔이 들어서게 되었다.
천원지방의 사상에 기초하여 지은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원구단이라 불렸는데 오늘날 환구단으로도 불린다. 圜이 '둥글 원', '돌 환' 두 가지 훈음으로 읽으면서 생긴 혼란이다. 본래 圜은 圓의 이체자로 구별 없이 쓰여서 이 건물이 세워질 때는 원구단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