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남효온(南孝溫 1444~1492)이 지은
사육신의 전기. 《추강 선생 문집(秋江先生文集)》 8권과 《생육신문집(生六臣文集)》 7권에 수록되어 있다.
육신전은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 (兪應孚) 순으로 사육신의 사생활과 그들의 행동 및 심문 사항을 적어 놓았다.
그 내용 중에는 박팽년은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자 경회루에 빠져 죽으려 하던 것을 성삼문 이 훗날의 거사를 위하여 말린 일이 기록되어 있다. 또 단종이 세조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 주게 되자 성삼문이 옥쇄(玉碎)를 안고 통곡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세조가 왕이 되자 성삼문을 예조 참판으로 삼았는데, 이에 성삼문 은 임금이 내린 녹을 받기를 거부하여 방에 가득 쌓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무신이었던 유응부는 단종을 복위할 계획이 탄로나자, 왕의 명으로 그의 살가죽을 벗기는 형벌 을 내렸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성삼문을 보면서 "서생(書生)들과는 일을 꾀할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러하구나."라며 탄식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불에 달군 쇠로 몸을 지지는 형벌 을 가해도 오히려 꿋꿋한 자세로 "이 쇠는 식었으니 다시 달구어 오라."며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남효온은 이 모든 행적을 서술한 뒤 기록하기를 "누가 신하가 못 되리오마는 거룩하도다, 여섯 분의 신하됨이여! 누가 죽지 않으리오마는, 크도다 여섯 분의 죽음이여!"라며 신하로서의 의리와 예(禮)를 다한 그들을 절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역사 기록에서 육신전이 배척됨으로써 자칫 사라질 뻔 하였으나, 그들의 행적을 남효온이 뛰어난 문장력과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사실 그대로 저술하였기에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