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 ~ 1680]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호는 백호(白湖), 또는 하헌(夏軒)이다.
1656년(효종 7년)에 세자 시강원 자의가 되고, 1660년에 효종이 죽자 복상 문제로 서인(西人)의 송시열과 논쟁을 벌였다.(
예송논쟁) 그 뒤 우참찬·대사헌등을 지냈으며,
1680년에
경신 대출척으로 남인이 물러나자 갑산에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는 종래의 주자의 해석 방법을 배격하고 《중용》 《대학》 《효경》 등을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당시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1689년(숙종 15년)에 아들 윤하제의 상소로 죄가 풀리고 영의정의 벼슬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