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 ~ ?] 소설가. 호는 춘원(春園)이며,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1910년에 일본 메이지 학원을 졸업하고 돌아와 중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1915년에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2년 후 최초의 단편 소설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를 발표하고, 이어 우리 나라 최초의 장편 소설 《
무정》을 매일 신보에 연재했다.
이광수는 1919년에 독립 항쟁의 상징인
2.8 독립 선언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그 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였고, 1923년 동아 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냈고, 1933년에는 조선 일보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 언론계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1937에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된 적이 있는데, 이 때부터 일본과 타협하며 친일 행위를 하였다. 그리하여 1938년에 친일파들의 단체인
조선 문인 협회 회장이 되었고, 창씨 개명하여 일본 이름을 가졌다. 그의 일본 이름은 가야마 미쓰로오라이다.
8·15 광복이 되자 친일파로 몰려 구속되었다가 병으로 풀려났으나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는 《원효 대사》 《
유정》 《사랑》 《무명》 《마의 태자》 《
흙》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계몽주의· 민족주의·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근대 문학사의 선구적인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