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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이서구(李書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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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구 (李書九)
[1754 ~ 1825]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호는 척재, 강산(薑山)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문장에 뛰어나 《장릉지》 《정조실록》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시로 이름이 높아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과 함께 한시의 4대가로 일컬어진다.
▣ 시민 참여 콘텐츠
▣ 시민 참여 (최근등록순) - 하위디렉터리 포함
◈ 시민참여
◈ 보도자료
 
2024.10.20
【문화】 옛날 양문리에 이서구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 사람은 대신이었지만 아주 검소하고 앞일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이서구 대감이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대감에게 업어서 건네달라고 했다. 대감은 아무말 없이 업어서 건네주었다. 이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감히 나이 드신 대감에게 업어 달라고 한다면서 ‘저 놈을 때려 죽여야겠다’고 하며 젊은이에게 달려들었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0
【문화】 양문대신 이서구 대감이 만세교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어느 양반 집 아들 하나가 지나가다가, 촌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자기를 건너편까지 월천(越川)을 해달라고 했다. 신을 벗고 건너가기가 귀찮아서 업어 건너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양문대신이 선선히 그 사람을 월천해 주고는, ‘누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물으면 자기가 월천해 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0
【문화】 옛날 포천에 양문대신이라는 정승이 있었다. 정승은 죽음에 이르러 궤짝 두 개를 짜서 봉해 놓고 후에 증손대에 그 궤짝을 풀어보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 증손이 그 궤짝을 풀어보니 그 안에는 낫과 호미 밖에 없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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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 ~ 1981] 호는 고범(孤帆)이고 필명으로 고성(孤星), 관악산인(冠岳山人), 춘풍(春風) 등을 썼으며, 창씨개명한 이름은 목산서구(마키야마 쯔이구)다. 해방 이후 「장희빈」 · 「강화도령」 · 「민며느리」 등의 작품을 낸 작가. 극작가 · 연극인 · 작사가 · 친일반민족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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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