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9 ~ 1343] 고려 시대의 문신·학자. 호는 매운당(梅雲堂)·백화헌(百花軒)이고,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1294년(충렬왕 20년)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지냈다.
1306년 비서승때 왕유소 등이
충렬왕 부자를 이간, 이에 연루되어 귀양갔다. 그 뒤 풀려나와 13년 동안 고향에 묻혀 살다가 1330년에
충숙왕이 원나라에서 돌아오자 감찰 장령에 임명되었다.
1340년에
충혜왕이 복위하자 예문관 대제학이 되어 성산군에 봉해졌다.
왕의 문란한 정치를 여러 번 충고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벼슬에서 물러났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시조 1수가 전한다.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