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53] 조선 초기의 무관. 그의 형 징석(澄石)과 더불어 뛰어난 무인으로 알려져 많은 일화를 남겼다.
1424년(세종 6년)에
김종서와 함께 침입해 온
여진족을 물리치고 영진 절제사가 되었다. 뒤에
6진을 개척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김종서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가 되었다.
1453(단종 1년)에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수양 대군 (뒤의
세조)에 의해 김종서의 일파라는 이유로 관직에서 쫓겨나자, 후임자 박호문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스스로 '대금 황제'라 일컬었으나 종성 판관 정종의 반격을 받고 아들 셋과 함께 살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