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8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으로 조선의 개국 공신 가운데 한 사람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의주의 만호(萬戶) 장렬(張烈)의 아들로서 대대로 지방의 세력가로 내려왔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만호에 올랐다. 그는 조정에 복종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무예가 뛰어나 같은 변방 출신인 이성계에 의해 동생 사정(思靖)과 함께 발탁되어 이성계의 심복이 되었다. 1388년 이성계 의 위화도 회군에 가담하여 회군 공신이 되었으며, 이후 밀직부사로 있을 때에 이지란과 함께 서해에 침입한 왜구 를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다. 1392년 이성계를 추대하고 조선의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 공신 1등에 올랐으며, 중추원 지사로 승진하고 화령군(和寧君)에 봉해졌다. 1398년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이방원을 도와 정사(定社) 공신 2등으로 영가군(永嘉君)이 되었으며, 태종 때에는 문하부참찬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에 우군총제· 의정부 참찬사 등을 지냈으며, 화산 부원군으로 진봉되면서 관직에서 물러났다. 압록강 연안 1,000리를 조선의 영토로 편입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뛰어난 용맹과 전략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희양(僖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