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이왕가(李王家)에 의해 설립된 이왕직(李王職) 도서관.
조선 시대에는 궁 안에 전각을 세워 책이나 문서 들을 보관하였는데, 세종 때의
집현전, 세조 때의
홍문관, 정조 때의
규장각 등이 그것이다.
1908년 고종은
규장각·
홍문관·
집옥재·
춘방·
4사고 등에 분산되어 있는 책들을 사간동의 인수관으로 한데 모으고, 곧 이어 서고를 새로 지어 장서각을 설립하려고 하였으나, 1910년 국권이 침탈되어 중단되었다.
이어 조선 총독부는 황실령 제34호에 따라 황실의 사무를 관장하는 이왕직 관제를 새로 제정하였고, 이에 따라 규장각이나 사고의 서적들을 이왕직안의 도서과에서 관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모든 서적들은 강제로 조선 총독부 취조국으로 옮겨졌다. 이 때 취조국으로 이관된 도서 내역은 도서가 5,355종 10만 137책이었으며, 기록류가 1만 1,730책, 활자가 65만 3,721개 71분(盆), 판목 7,501장, 기타 부속품이 12종이었다. 이왕직에서는 그 밖의 서적, 즉 각 군영에서 모은 도서들과 창덕궁 선원전에 있던 책들을 취조국에 인계하지 않고 따로 보관해 두고, 새로 구입한 도서들과 무주 적상산 사고(史庫)의 도서들을 옮겨 와 1911년 6월 19일 선원전에 '이왕직 장서각'을 설치하였다.
이 도서들은 1915년 창경궁 안에 신축된 4층 서고로 옮겨졌으며, 1918년 서고 이름을 ' 장서각'으로 바꾸었다. 이 장서각은 1937년 이왕직 박물관이 덕수궁으로 옮겨진 후 박물관이 있던 자리인 창경궁 영춘헌 북쪽으로 옮겨졌다.
1945년에 미군정은 이왕직을 구왕궁 사무청으로 개편하고 이 곳에서 장서각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때 장서각의 귀중 도서가 상당수 분실되었다. 그 중 적상산 사고에서 옮겨 온 조선 왕조 실록 1,763권 900책이 행방 불명 되었으나, 최근에 북한의 국가 문서고와 중앙 역사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55년에는 대통령령 제1035호에 따라 구왕궁 사무청 대신 창경원 사무소에서 장서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1961년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열람이 허용되었다. 1969년 대통령령 제4263호에 따라 문화재 관리국 으로 관리가 이관되었다가, 1981년 11월 대통령령 제10588호에 의하여 장서각의 도서는 모두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도서관 으로 옮겨졌다.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책들은 역대 임금들이 지은 글 및 금·은·옥·죽으로 만든 책문류 등의 왕실 관계 자료, 조선 태조 호적 원본·공신록 등 고문 서류, 각 군영으로부터 모은 구위대(九衛隊) 수장 도서, 무주 적상산 사고에서 이관받은 도서, 궁체로 쓰여진 한글 소설류 등이다.
총 장서의 수는 약 1만 8,600종, 8만 8,700여 책에 이른다. 한편 장서각에서는 여러 차례 소장하고 있던 도서의 목록을 정리하여, 책으로 편찬해 내고 있다. 1914년 '이왕가 도서실 장서 목록'을 발행한 이후 1924년과 1935년 두 차례에 걸쳐 '이왕가 장서각 고도서 목록'을 편찬하였다.
1972년에는 '장서각 도서 한국판 총목록'을 간행하였으며, 1975년 '한국판 보유편'이 편찬되었다.
장서각의 도서들은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도서관으로 이관된 뒤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 보존과 이용이 한결 편리하게 되었다.